금융당국 “석유화학, 대주주 뼈를 깎는 자구노력 있어야”
금융권 지원 전제 조건 … “금융권이 엄중히 평가해 달라”
정부가 경쟁력 위기를 겪고 있는 석유화학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선 가운데 금융당국이 대주주의 뼈를 깎는 강력한 자구노력을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금융권의 석유화학 산업재편과 관련한 지원 역시 이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1일 오전 금융위원회는 권대영 부위원장 주재로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석유화학 사업재편 금융권 간담회’를 개최했다.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과 은행연합회, 산업은행·수출입은행·중소기업,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무역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등 정책금융기관이 참석했다.
권 부위원장은 “석유화학산업은 중국·중동발 공급과잉, 원가경쟁력 저하 등으로 더 이상 수술을 미룰 수 없는 처지가 됐다”며 “우리나라 대기업 집단의 캐시카우였던 석유화학기업들은 적자가 누적되며 이제 계열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고 구조조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일본의 산업 재편 성공 사례를 제시하며 “누구 하나 쓰러질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는 치킨게임은 공멸의 길”이라며 구조조정이 시급한 과제임을 강조했다.
세계 2위 수준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보유했던 일본은 1980~90년대 기업결합, 설비 통폐합 등의 사업 재편을 시작, 현재 석유화학산업 범용부문은 내수위주로 대응하고 고부가가치 부문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공급과잉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이유라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기업 구조조정에 일관된 원칙으로 제시한 △철저한 자구노력 △고통분담 △신속한 실행을 이번 석유화학 사업재편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권 부위원장은 “이익은 자기의 것으로, 손실은 모두의 것으로 돌리는 행태는 시장과 채권단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며 “대주주와 계열기업은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 뼈를 깎는 자구노력과 구체적이고 타당한 계획, 신속한 실행으로 시장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를 경고한 것이다.
금융권을 향해서는 “냉철한 관찰자, 심판자이자 조력자로서 기업의 자구노력과 계획에 대해 엄중히 평가하고 타당한 계획에 대해서는 적극 뒷받침해 주기 바란다”며 “사업재편 계획이 확정될 때까지는 기존 여신 회수 등 비올 때 우산을 뺏는 행동은 자제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금융기관들은 기업과 대주주의 철저한 자구노력과 책임이행을 전제로 사업재편 계획의 타당성이 인정되는 경우 채권금융기관 공동 협약을 통해 지원키로 협의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NICE신용평가는 ‘석유화학산업 현황과 이슈점검’에 대해, 산업계 자율컨설팅을 수행한 BCG컨설팅은 ‘석유화학 구조조정을 위한 사업재편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참석자들 간 석유화학산업의 현황과 구조개편 방향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 것이다.
권 부위원장은 “지금은 얼어붙은 강을 건너는 때”라며 “줄을 묶고 함께 건너면 정부가 손을 잡아주지만, 홀로 걸으면 얼음이 깨질 위험을 감수해야한다. 산업계와 금융계가 함께 책임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금융권은 간담회 논의 결과를 토대로 은행·정책금융기관이 참여하는 금융권 공동 협약을 신속하게 협의하기로 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