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 칼럼

한국의 과학영재들은 왜 한국을 떠날까

2025-08-21 13:00:16 게재

중국 과학기술의 약진에 대한 감탄과 우려의 소리를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중국 인재는 공대에 몰리는데 한국 인재는 의대에만 미쳐있다는 ‘21세기형 망국론’이 정설이 됐다. 중국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법조인 의사가 공무원으로 편입되어 있어서 경제적 보상을 못받는 그 나라의 제도 때문에 인재가 공대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도 의사 월급을 국가에서 공무원 수준으로 규제한다거나, 판·검사에서 물러난 법조인의 변호사 개업을 법으로 막아 그들이 몇년 안에 수십억 재산을 모을 기회를 없앤다면 탁월한 두뇌의 흐름은 다시 공대 쪽으로 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법조인이나 의사직은 이제 신분상승보다 신분유지의 직업에 가깝다. 연소득이 수억원인 의사 집안에서 금수저로 자란 자녀에게 공대를 권하는 건 부모에 비해 겨우 1/3 정도 수준의 경제생활을 감수하란 뜻이다. 요즘 의대에 입학한 학생들의 출신 고교와 집안 내력을 살펴보면 부모, 혹은 조부모 세대부터 쌓아온 집안의 부를 안전하게 대물림하면서 평생 갑의 위치를 유지할 만한 직업으로 선택한 게 의사라는 것이 뚜렷해진다.

1980년대까지 서울대 공대를 선택한 이들은 대부분 서울의 이름난 의대를 가고도 남을 성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30년 간 그들을 만날 때마다 바뀐 직장의 명함을 받는 게 다반사였다. 그만큼 안정성 없는 줄타기식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대학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면 경제적 안정은 물론이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40년 쯤 한 자리에 앉아 온전히 자신이 다스리는 왕국에서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살리는 보람있는 삶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중국의 공대쏠림과 한국의 의대쏠림 차이

한편, 과학을 전공한 중국 젊은이들에겐 ‘과학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다’는 애국심이 아직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다. 학교 교육으로 주입된 것이면서 동시에 중국은 역사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우월했다는 중화사상의 발현같다.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그만한 애국심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입시경쟁 위주의 학교 교육 영향도 있겠지만 그들이 자라면서 보고 배운 지도층에게서 애국심을 가진 훌륭한 과학자의 본보기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닮고 싶은 사람이 없을 때 젊은이들의 미래 선택 방식은 이상보다 얄팍한 현실에 근거하게 된다.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지속시키기 위해 과학자와 공학자가 중요하고 그들의 숫자가 많아지길 원한다면 그들을 칭찬하고 홍보하고 보상해주어 닮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중국이 과학영재를 조직적으로 키우는 동안 우리는 의대영재만 키운다는 속설은 오류다. 의대입학을 위한 중·고등학교 교육은 철저히 과학과 수학 중심이다. 우리에겐 매년 수천명의 학생들이 치열한 입시경쟁을 거쳐 들어가고 싶어하는 과학고와 영재고 제도가 있다. 이들에게 3년 쯤 과학공부를 앞당겨하는 것은 기본상식이다.

해마다 열리는 국제 수학·물리 올림피아드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고등학생들은 중국, 미국과 자웅을 겨루어 늘 1,2등을 다툰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언론에서 간단히 언급만 될 뿐 강조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과학적 영재의 자산이 없다기보다는 있어도 모른 척 해 갈 곳을 의대로만 향하게 한다는 게 현실이다.

몇년 전 우리나라 최고 과학영재가 모인 서울의 한 영재고에서 세계 최고 이공계 영재가 모이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무려 여섯명이 입학하는 대사건이 있었다. 미국의 어느 명문 고등학교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숫자의 학생이 한꺼번에 입학한 것이다. 아이들의 부모들은 한결같이 국내에서는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없었을 우리 아이를 수학 과학 잘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받아준 미국 대학에 대한 고마운 소감을 전했다.

입시지옥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 입상 사실도 자소서에 기재하지 못하는 제도를 손볼 생각은 하지 않고 의대 광풍을 학생과 그 부모들의 속물근성 탓으로 돌리는 것이 옳은지 돌아볼 때다.

지금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 인재는 미국 명문대를 간다. 자식이 나보다 나은 삶을 살기 바라는 건 국민소득 3000달러 때나 3만달러일 때나 똑같은 부모의 심정이다. 현실적인 유인책, 요즘 유행하는 말로 ‘넛지(nudge)’가 무엇일까 고민해야한다.

하버드대학 물리학과에만 무려 네 명의 한국인 교수가 있다. 박홍근 김필립 노승한 정수연이다. 요즘 가장 주목받는 물리학 분야인 양자과학과 인공지능 분야에는 하정완 김한영 최순원 조경현 최예진 이수인이란 대단한 인재가 미국 각지의 명문대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오픈AI에서 연구중인데 메타가 모셔간 정형원도 있다.

지금 한국의 과학 실력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을 포괄하면 역사상 가장 뛰어난 수준이다. 다만 그런 현실이 국민들에게 전달되고 있지 않을 뿐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세계 수준의 한국인 과학인재들을 국내 연구기관에서 품지 못하는 건 우리 사회의 어떤 부족함 때문일까 고민하는 게 올바른 수순이다.

최고 과학인재 품지 못하는 것부터 고민을

젊은 시절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던 최준석 선생은 과학의 중요성을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깨닫고 국내에서 활동하는 물리학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들의 과학자로서의 삶을 듣고 기록해 ‘물리열전’이란 책을 냈다. 공학자이자 사업가인 민태기 박사는 우리가 어둡게만 기억하는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에도 세계 속에서 어깨를 겨룬 한국인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이라는 책으로 소개하고 있다.

의대망국론을 들먹이기 전에 우리가 견고하게 쌓아 올린 과학 공학의 업적과 위인들을 널리 알려서 어린이들과 청년들이 눈을 들어 바라보고 닮아갈 수 있는 큰 바위얼굴을 많이 만들어 주면 좋겠다.

한정훈 성균관대학교 교수 물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