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여행, 농촌일손여행 전남 고흥 동행기

고추·서핑·시골친구, 청년을 다시 부르다

2025-08-22 13:00:04 게재

전남대 농생대 학생 30명, 전남 고흥서 2박3일 농촌일손여행 … 다시 찾는 고흥 마중물 기대

돕고 즐기고 만나는 신개념 여행 … 농식품부·NH도농상생국민운동본부 8개 농촌모델 실험

대학생들의 농촌활동(농활)은 오래된 역사다. 농촌계몽운동, 농촌봉사활동 등을 거쳐 농활로 이어왔으나 지금은 거의 대가 끊겨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21 청년 대학생의 농촌 인식과 유입 의향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87.3%는 농업·농촌이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인식 대비 경험 비율은 낮은 편이다. 농활을 통해 농업·농촌을 경험한 대학생 비율은 16.2%로 나타났다. 적절한 변화가 필요하다. 농림축산식품부와 NH도농상생국민운동본부가 추진하는 ‘농촌일손여행’은 시대적 흐름에 조응하는 새로운 농활을 모색하는 단계에서 태어났다. NH도농상생국민운동본부는 도시와 농촌의 자발적 상생협력을 통해 국민행복에 기여하고, 농업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고된 노동으로 쳐다보기도 싫은 농활’이 아닌 의미와 재미, 지속 가능성을 모두 잡는 여정이 목표다. 12~14일 이뤄진 전남 고흥 농활에서 그 가능성을 탐색해본다. <편집자주>

“도시에서만 살아서 농촌 생활을 체험할 기회가 없었어요. 농촌 일손 돕기는 물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 재미있어 보였어요. 동기들과 추억도 쌓고 시골친구도 사귀고 싶어서요.” 전남 고흥 ‘농촌일손여행’에 지원한 전남대 농업생명과학대학(농생대) 학생들이 말하는 참가 이유다.

12일 오전 10시 30분 전남대 광주캠퍼스 제2학생마루 앞에 30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고흥으로 떠나는 ‘GO!GO!GO! 농활원정대’ 대원들이다. 들뜬 표정으로 출발을 기다리는 이유빈(농경제학과·4) 농생대 학생회장은 “신청자가 많아 빨리 마감됐다”며 “농생대 학생에게 농활은 직접 농촌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와 NH도농상생국민운동본부는 전남 고흥을 비롯해 경북 영천, 충남 홍성 등 전국 8개 농촌 지역에서 새로운 농활 모델을 시도하고 있다. ‘농촌일손여행’은 ‘일하고, 즐기고, 만나고’라는 콘셉트 아래 대학생들이 농사일에 직접 참여하고 지역 자원을 활용한 체험 클래스 등을 경험하며 지역 주민들과 만나 교류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특히 각 지역별로 사전 선정한 ‘시골친구’는 농촌 일손 지원과 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한다. 전남대의 경우 정지영 아고라솔루션 대표가 시골친구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일회성 활동과 체험이 아니라 농활을 계기로 농촌을 다시 찾도록 하는 게 사업의 목표다.

비가 오는 가운데 고추 따기 일손을 돕고 있는 전남대 농생대 학생들

일하GO! 비가 내리는 가운데 고추 수확

광주에서 출발해 2시간 정도 달리자 너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설레임도 잠시. 농활 첫날부터 고흥엔 장대 같은 비가 쏟아졌다. 오후로 접어들자 다행히 비가 강하게 퍼붓다 잦아들기를 반복했고, 잠깐 그치는 틈을 타 학생들은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고추를 땄다. 비가 와도 농촌에선 일손을 놓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지역 주민 김병호씨는 “참깨는 꼬투리가 익어 벌어지기 시작하면 땅으로 쏟아지기 때문에 그 전에 깻대를 베어야 한다”며 “수확해야 하는 작물이 있을 때는 비가 와도 일을 한다”고 전했다.

한진우(응용식물학과·1)씨는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웃으면서 작업할 수 있어 재미있었다”며 “비로 인해 많이 수확하지 못한 게 오히려 아쉽다”고 말했다.

농활 둘째 날 오전 9시 학생들은 유자밭으로 향했다. 폭우가 내렸던 첫날과 달리 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졌다. 학생들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진한 유자 향기를 맡으며 유자 열매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땄다. 수확한 유자가 어떤 상품으로 개발되고 있는지 알기 위해 청유자청도 담가봤다. 유자는 고흥의 대표적 특산물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다 익은 노란 유자는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수확한다.

아버지의 유자 농사를 이어받아 농장을 운영하는 청년농부 채수인 순수유자 대표는 “아직 덜 익은 청유자로 상품 개발을 하고 있다”며 “시기적으로 수확 시기도 맞고, 새롭게 도전하는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청유자를 농작업 대상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수확한 청유자로 유자청을 만들기 위해 씨를 제거하고 있다.

즐기GO! 서핑하러 꼭 다시 올게요

기존 농활과 비교해 농촌일손여행의 가장 큰 특징은 ‘즐기고’다. 획일적인 농촌의 콘텐츠에서 벗어나 농촌의 자원을 새롭게 발견하고 경험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촌일손여행사업 진행을 맡은 강미숙 브랜드쿡 대표는 “처음 사업 기획 당시 있었던 ‘배우고’ 콘셉트가 중간에 ‘즐기고’라는 콘셉트로 바뀌었다”며 “어떻게 보면 배우기보다는 즐기는 게 요즘 MZ식 사고와 맥을 같이 하면서도 농촌일손여행의 핵심일 수 있다”고 전했다.

둘째 날 점심을 먹고 학생들이 향한 곳은 남열해수욕장이다. 전국 5대 서핑 명소로 잘 알려져 있으며, 전남에서 유일하게 서핑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3시간 동안 서핑을 즐겼다.

전주은(응용식물학과·3)씨는 “손으로 하는 작업이나 액티비티를 좋아하는데 고흥 농촌일손여행의 3고 콘텐츠가 정말 저와 잘 맞아 즐거웠다”라며 “서핑하러 꼭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김건진 남열서핑학교 대표는 “그동안 단체 강습을 많이 진행해봤는데 농활을 온 학생들을 가르쳐 본 경험은 처음”이라며 “서핑을 통해 고흥지역을 더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했다.

농촌의 경쟁력 있는 고유 콘텐츠와 전문가 수준의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농활을 통해서도 학생과 지역 농가의 지속적인 관계 맺음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고흥지역은 남열 해변 서핑에서 그 맹아를 찾아볼 수 있었다.

남열해수욕장에서 서핑을 즐긴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유자 농장에서 만난 청년농부 채수인 순수유자 대표

만나GO! 고흥에 가면 시골친구가 있잖아

농촌일손여행에서 ‘시골친구’는 지역을 연결해주는 로컬브릿지 같은 존재다. 대부분 귀농 귀촌으로 농사짓거나 창업 활동을 하고 있다. 정지영 대표는 “머무는 기간이 짧고 프로그램에 집중하다 보니 학생들과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눌 시간이 부족했다”며 “하지만 마지막 날에는 많이 가까워져 연락처가 적힌 명함이 동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서핑 또 하러 가자, 근데 다음에 오면 어디서 자, 우리 시골친구 있잖아”라고 말하면서 까르르 웃었다. 다시 찾을 농촌이 낯설지 않을 이유가 시골친구에게 있다는 반응이다.

김신영(산림자원학과·4)씨는 “졸업하기 전 농활 체험도 하고 서핑도 해보고 싶어 왔는데 정말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짧았던 추억을 아쉬워하며 학생들은 다음 농촌일손여행을 기대했다.

취재·사진 홍혜경 리포터 hkhong@naeil.com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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