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젤렌스키 정상회담 ‘먹구름’

2025-08-22 13:00:01 게재

트럼프 물꼬 텄지만 장애물 산적 … 정당성과 안전보장 등 기싸움 팽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엘멘도르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추진되고 있지만 현실적 접점은 여전히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러시아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당성’부터 따지며 회담 자체에 조건을 달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그보다 안전보장 협상이 먼저라며 일정 조율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1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이 회담에 열려 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서명할 법적 권한을 갖췄는지가 우선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상회담은 언론이나 정치 이벤트가 아니며 철저한 실무 준비와 정당한 협상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러시아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임기 종료 후 계엄을 이유로 선거를 미룬 점을 들어 현재의 정부가 법적으로 불완전하다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도 회담에 소극적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우선 유럽과 미국의 안전보장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은 그 이후에 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를 배제한 채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및 군사 배치 계획을 논의하는 데 대해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유럽군이 어떤 형태로든 우크라이나에 주둔하는 것은 러시아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개최지를 놓고도 다양한 의견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스위스 제네바를 추천한 가운데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고,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자국 유치를 언급했다. 이처럼 정상회담이 실현되기까지는 실무 준비, 법적 검토, 정치적 합의 등 여러 장벽이 존재한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제시한 조건들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 지역 전체 포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포기, 중립국 선언, 서방군의 우크라이나 주둔 금지 등이 핵심이다. 다만 최근에는 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 철수 요구를 일부 완화하고 해당 지역에서 전선을 동결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하르키우주와 수미주 일부 지역을 우크라이나에 반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타협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서는 돈바스 철수가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여전히 해당 지역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고 있으며 국민 정서도 양보에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알래스카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18일 백악관에서 젤렌스키 대통령 및 유럽 지도자들과 회담한 후 본격적인 조율에 나섰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 직후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 없이 승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언급해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에 부정적이던 태도에서 벗어나 반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는 러시아에 협상 압박을 가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의 반격과 협상은 동시에 병행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군사적 주도권을 지키면서도 외교 무대에서는 서방의 지원을 바탕으로 협상의 명분을 쌓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서방군 주둔을 막기 위한 ‘안보 완충지대’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중심의 국제안전보장 논의도 병행 중이다. 2022년 이스탄불 협상 당시처럼 우크라이나가 중립국을 선언하고, 영국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가 이를 보장하는 형태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푸틴과 젤렌스키 정상회담 성사 여부가 그 가능성을 엿볼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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