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윤석열 취임식 찬란한 무지개는 무엇이었나
정치브로커 명태균씨는 20대 대선과정에서 ‘대통령직에 이해가 없는 사람’ 윤석열을 국민의힘 후보로 띄우고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김건희 부부와는 ‘박사님’ ‘선생님’으로 불리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관계가 틀어져 그 부부의 공천개입 의혹을 폭로했다가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된 후 보석으로 풀려나 폭로와 비판의 목소리를 이어오고 있다.
그런 명씨가 얼마 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얘기 가운데 윤 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서 느꼈다는 소회에 관심이 갔다. “대통령 취임식 때 쌍무지개가 떴길래, 내가 ‘대통령이 둘이라서 그런가 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대선 캠프를 꾸리는 과정에서 김건희씨가 명씨에게 ‘남편과 내가 인사권 공천권을 5 대 5로 가지기로 했다’고 해서 “여사님, 그래도 후보가 중심이 돼서 선거를 치러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돌려서 조언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선생님, 괜찮아요. 원래 시작할 때 저하고 오빠하고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라고 하더라는 얘기에 이어 나온 말이었다.
김 여사 윤정부 인사에 깊숙히 개입한 정황
대통령 재임시절 내내 ‘윤건희 정권’ ‘V1 윤석열 대통령, V0 김건희 여사’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윤석열정부 요직 인사에 김 여사가 깊숙이 개입한다는 얘기가 많았던 만큼 저 대화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쌍무지개가 떴다’는 부분은 왜곡된 기억이다.
취임식 때 찬란한 무지개가 뜬 것은 맞지만 쌍무지개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흔히 보는 무지개와도 달랐다. 쌍무지개를 포함한 일반 무지개는 비 온 뒤 대기 중의 작은 물방울들에 햇빛이 굴절되어 생기며 태양을 등지고 서야 보인다.
그 날은 맑은 날씨였고 동남쪽 하늘 높은 곳에 엷은 구름이 조금 떠 있었을 뿐이어서 상식적으론 무지개가 생길 수 없는 기상조건이었다. 그런데 10시에 시작된 취임식 사전 행사가 끝나고 11시 좀 넘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선서에 이어 취임 연설에 들어가자 동남쪽 높은 하늘에 찬란한 무지개가 떠올랐다.
이 신비한 대기광학현상은 보통 수평무지개로 불리는데, 정확한 명칭은 '수평호'이다. 태양 고도가 58도 이상이고 권운 계열의 높은 구름을 형성하는 육각판 모양의 작은 얼음결정이 수평으로 늘어서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 하에서 생기는 데다 지속시간이 짧아 평생을 가도 못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국회의사당 앞마당은 동향이라 취임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그 신비한 무지개 현상을 바라봤고 앞 다퉈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신기하게도 한동안 떠 있던 무지개는 취임연설이 끝날 즈음 사라졌으니 하늘도 윤 대통령의 취임을 축복한 것이라고 다들 여길 만했다. 종편 채널 시사 프로그램 패널로 참석한 국민의힘 소속 한 의원은 그 순간을 감격스럽게 전하기도 했다.
무속에 깊이 빠진 윤석열 김건희 부부야말로 하늘이 자신들을 돕는 길조라며 매우 기뻐했을 터이다. 허나 하늘이 보여준 희귀한 그 무지개는 결과적으로 국가 변란과 국민의 고통, 두 부부의 파멸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조였던 셈이다. 취임식에는 윤 전 대통령을 망상과 어리석은 결정으로 이끌 무속인들과 극우 유튜버들도 다수 참석했었다. 찬란한 무지개 아래서 벌써 비극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찬란한 무지개 아래서 시작된 비극
3개 특검의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윤석열 김건희 부부의 비리와 죄상이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 재임 중은 물론 결혼 전후 김건희 씨 모녀가 검찰 등 권력을 뒷배삼아 벌인 비리도 한 둘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대선 출마를 본격화할 때 검찰 출신의 한 지인이 그 이유를 묻자 “최고 권력을 잡지 않고서는 우리 가족이 감옥행을 피할 길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돌아보면 저 답변은 진심이라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대통령 재임 중에 비리가 더 심했으니 믿을 만한 후계자도 대안이 될 수 없다. 결국 10월 유신처럼 군 병력을 동원해 영구집권을 꾀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 실행이 12.3 비상계엄이었다. 우리 국민의 민주주의 저력이 저 끔찍한 시나리오를 막아낼 줄 알고 그날의 무지개는 더 찬란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