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반도체에 손댔다

2025-08-25 13:00:01 게재

인텔 지분 10% 취득·엔비디아 수출 통제 해제 ··· 산업 정책 논란 확산

미국 상무부 장관 하워드 러트닉이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반도체 산업에 전례 없는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다. 첫째는 인텔 지분 10%를 직접 취득한 것이고, 둘째는 엔비디아의 중국향 H20 칩 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한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대통령의 개인적 판단과 기업 로비가 교차한 이례적 사례”라고 규정하며 미국 산업정책의 방향성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발표로 미국 정부는 칩스법 보조금 가운데 89억달러를 전환해 인텔 지분 약 9.9%를 확보했다. 매입가는 주당 20.47달러로, 직전 종가인 24.80달러보다 낮은 수준에서 결정됐다. 인텔 이사회는 이미 해당 거래를 승인했으며, 미국 정부는 여기에 더해 5년 내 파운드리 사업이 분리될 경우 추가 5%를 매입할 수 있는 권리도 손에 쥐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인텔 모두에 위대한 거래”라며 “첨단 반도체 생산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근본적”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인텔에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보조금 대가로 지분 참여를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며, 한국 기업들에 대한 압박도 커지고 있다.

인텔의 상황은 단순한 기업 지원 차원을 넘어 국가 전략과 직결된다. 인텔은 지난 20년간 스마트폰 전환, 첨단 노광장비 도입, 인공지능 반도체 붐 등 주요 흐름을 거의 모두 놓쳤다.

매출은 2021년 800억달러에 근접했으나 2024년 500억달러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200억달러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시가총액은 1000억달러 선으로 추락해 한때 10배 이상 컸던 대만 TSMC에 완전히 밀렸다.

그럼에도 인텔은 미국 내 유일한 첨단 파운드리 역량을 보유한 기업이다.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대만해협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미국 경제는 수조달러 손실을 볼 수 있다”며 “인텔 투자는 화재보험과 같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문제는 인텔이 구조적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립부 탄 CEO는 올해 말까지 전체 인력의 25%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과 폴란드의 신규 투자는 전면 취소됐고, 미국 오하이오에 추진 중이던 첨단 공장 건설도 2030년대로 미뤄졌다.

인공지능 시장에서는 이미 엔비디아가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클라우드 대기업들은 자체 칩 개발로 외부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최대 주주로 나서는 것은 경영 자율성을 제약하고 정치적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한편, 엔비디아의 H20 칩 수출 통제 해제는 국가안보 논란을 전면에 부상시켰다. H20은 중국 시장 전용으로 개발된 인공지능 추론용 칩으로, 미국이 기술 우위인 분야다. 당초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이를 금지했지만, 젠슨 황 CEO와의 면담 이후 돌연 금지를 풀고 수익의 15%를 정부가 가져가는 조건을 달았다. 전직 CIA 중국 담당 분석관 라이자 토빈은 “H20은 중국의 인공지능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핵심 기술”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단순한 구제품 수출 정도로 인식하고 거래를 허용한 것은 심각한 실수”라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산업정책의 일관성을 무너뜨리는 조치”로 평가했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의 기술 굴기를 억제하기 위해 반도체 장비·칩 수출을 제한해왔지만, 이번 조치로 중국은 오히려 필요한 기술을 공급받을 수 있는 길을 확보했다. 동시에 정부는 기업 수익에 직접 손을 대며 일종의 ‘수익 공유 모델’을 만들어냈다.

존 프리도 편집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국가안보보다 재정적 이득을 우선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이중적 태도가 드러난다. 시장 자율을 중시하는 전통적 보수 가치와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국영기업 모델에 가까운 개입을 서슴지 않고 있다. 지난해 미국 정부는 US스틸 인수 과정에서도 ‘황금주’를 요구해 전략적 의사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이번 인텔 지분 취득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사회주의적 국가 개입”이라는 불편한 시선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정치가 산업을 좌우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고 분석한다. 인텔의 지분 취득은 장기적 안보 논리로 설명되지만, 동시에 대규모 구조조정 국면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작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엔비디아 사례 역시 기업 로비와 대통령의 단기 판단이 정책을 뒤흔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미국 반도체 전략은 ‘보험적 투자’와 ‘단기 재정 이익 추구’가 혼재된 채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방향성은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근본적 목표를 오히려 희석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양현승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