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 사상 최대 규모 자사주 매입
올해 1.1조달러 돌파 예상 애플·구글·대형은행이 선도
미국 기업들이 올해 들어 기록적인 속도로 자사주를 매입하며 주식시장 상승을 이끌고 있다. 풍부한 현금과 견고한 실적을 바탕으로 한 이번 매입 러시는 증시 호황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시장조사기관 버리니 어소시에이츠에 따르면, 올해 현재까지 발표된 자사주 매입 규모는 9836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1982년 집계 시작 이후 가장 큰 규모로, 연말까지 1조1000억달러(1529조원)를 넘어 사상 최고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이번 매입 열풍을 주도하는 것은 애플과 구글 모회사 알파벳 등 빅테크 기업들이다. 여기에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모건스탠리 같은 월가 대형 은행들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기업들의 탄탄한 실적과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정책이 현금 보유량을 크게 늘렸다. 이렇게 쌓인 여유 자금이 4월 관세 우려로 한때 흔들렸던 증시를 다시 끌어올리며, S&P500과 나스닥 지수를 연일 사상 최고치로 밀어올리고 있다. 반면 통상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신규 투자는 미뤄지면서, 자사주 매입이 더욱 매력적인 현금 활용 방안으로 부각됐다.
버리니 어소시에이츠의 제프리 루빈 사장은 “기업들이 현금이 넘쳐난다”며 “실적 호조 이전부터 이미 재무 건전성이 양호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자사주 매입은 시중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자동으로 끌어올리고, 주가 상승 효과를 창출한다.
지난 7월 한 달 동안 미국 기업들이 발표한 자사주 매입 규모가 1656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2006년 7월 기록(877억달러)의 거의 두 배 수준이다. 올해 1분기 S&P500 기업들의 실제 매입액은 2935억달러로 분기 기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애플은 최대 1000억달러 규모 매입 계획을 발표했고, 알파벳은 700억달러 계획을 공개했다. 금융권에서는 JP모건이 500억달러, 뱅크오브아메리카가 400억달러 규모의 매입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비판론자들은 현재 주가가 이미 고평가된 상황에서 기업들이 비효율적으로 자금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설비 투자나 배당 확대 대신 자사주 매입에만 치중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으로 인한 성장 둔화를 일시적으로 가리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흥미롭게도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2분기에도 자사주 매입을 하지 않았으며, 보유 현금은 오히려 3440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자사주 매입 열기가 당분간 증시 상승세를 뒷받침할 것으로 전망한다. 팩트셋에 따르면 S&P500 기업 중 91%가 2분기 실적을 발표했고, 이 가운데 82%가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다. 로건캐피털매니지먼트 전무 빌 피츠패트릭은 ‘이는 시장 전반에 긍정적 신호’라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