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허영의 시장’ 속 미국 대통령
노벨평화상을 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요한 셀프 로비가 상식선을 넘으면서 그의 욕망은 국제사회의 풍자의 소재가 되고 있다. 노르웨이 권위있는 경제 일간지 다겐스 네링슬리브는 지난 8월 14일 “트럼프 대통령이 옌스 스톨텐베르크 노르웨이 재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노벨평화상을 받고 싶다고 문의했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재무장관이 지난 7월 오슬로 시내를 걷다 느닷없이 트럼프 전화를 받았고, 양국 관세 문제 이야기가 오가다 결국 화제가 노벨상으로 흘렀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이 짧은 통화만으로도 트럼프가 얼마나 노벨상에 매달려 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노벨상은 스웨덴이 주관하는 다른 부문과 달리 평화상만은 노르웨이 의회가 선임한 5인 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스톨텐베르크는 총리를 두 차례 지낸 뒤 NATO 사무총장까지 역임한 유럽의 유력한 정치인이다. 트럼프와 여러 차례 국제 회의에서 마주쳤던 그는 이번에도 세계정치의 권력자와 기묘한 대화를 주고받은 셈이다.
노벨평화상 후보 명단에는 매년 수백명이 오른다. 트럼프 역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몇몇 노르웨이 국회의원들의 추천으로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본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회가 왔다고 여겼을 것이다.
트럼프 노벨평화상, 냉소적인 노르웨이
그러나 노르웨이 여론은 냉소적이다. SNS에서는 “노르웨이 정치인들이 트럼프를 뽑을 가능성은 제로”라는 반응이 이어졌고, 언론도 “노벨상은 독립적 위원회가 결정하는 만큼 외부 압력이나 쇼맨십은 통하지 않는다”며 트럼프를 풍자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프랭크 브루니는 “트럼프에게 노벨상을 줘라. 에미상도, 오스카상도 다 줘라”고 비꼬았다.
사실 트럼프의 노벨평화상 집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는 2017년 1기 대통령 시절부터 국제 분쟁에 개입할 때마다 “노벨상감”이라는 말을 흘리곤 했다. 한반도 문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실패로 끝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도 그가 스스로 ‘노벨상감 이벤트’라 포장하려 했던 대표적 사례였다. 실제로 노르웨이 국회의원들이 트럼프를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시각에서 전쟁과 평화는 거래의 대상처럼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3년째 이어지며 수많은 사람이 하루하루 생사를 기약 없이 살아가고 있다. 아이를 전장에 보내야 하는 부모와, 오늘도 무사히 넘기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평화란 삶의 마지막 버팀목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 절실한 평화를 자신의 정치적 홍보와 노벨상 욕망의 소재로 삼는 듯하다. 이 모습은 존 번연의 고전 ‘천로역정’에 나오는 “허영의 시장(Vanity Fair)”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허영의 시장에서는 “세상 모든 허영과 사치, 욕망과 헛된 명예가 팔리고 있다.” 트럼프가 노벨상을 장식품처럼 탐하는 행태는 바로 그 허영의 시장에서 명예 쇼핑에 나서는 꼴이다. 그의 자기도취는 정치 집회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지지자들이 “노벨! 노벨!”을 외치면, 그는 이미 수상자가 된 듯 의기양양해진다. 마치 명예 자체가 쇼의 일부라도 되는 듯한 장면이다. 그에게 노벨상은 평화의 상징이라기보다 정치적 쇼맨십의 소품일 뿐이다.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에서 평화상 수상자 덕목으로 “국가 간 형제애 증진, 군비 축소, 평화회의 주선”을 꼽았다. 교과서적 의미로는 비폭력과 화해, 인류 공동선에 헌신한 이들이 수상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중재자나 세계적 상징성이 큰 인물이 받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든 기본 정신은 “인류에 기여한 평화”다. 트럼프처럼 스스로를 홍보하며 쟁취하려 드는 모습은 노벨상 정신과 거리가 멀다. 더구나 그는 인류 보편의 가치에도 역행했다. WHO(세계보건기구) 분담금을 삭감하더니 탈퇴했으며,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파리기후협정을 두 차례나 이탈했다. 반면 노르웨이 위원회는 2007년 앨 고어 전 미국부통령과 IPCC(정부간기후변화협의회)를 공동 수상자로 선정하며 기후변화를 인류의 평화와 직결된 과제로 인정했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에게 평화상을 준다면 이는 자가당착이 아닐까.
넬슨 만델라는 27년 감옥 생활을 딛고 남아공을 화해로 이끌었고, 지미 카터는 퇴임 후에도 분쟁 중재와 구호활동에 헌신하며 인류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래서 그들이 평화상을 수상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세계인들은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세운 평화는 자기 도취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마음의 발로요 희생의 결실이었기 때문이다.
노벨평화상 권력자의 장식품이어선 안돼
노벨평화상은 권력자의 장식품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을 실질적으로 멈추게 하고 인류 공동선에 기여한 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트럼프가 아무리 “노벨! 노벨!”을 외쳐도 허영의 시장에서 흥정하듯 얻을 수 있는 상은 아니다. 그의 집착이 오히려 노벨상의 권위를 비추는 풍자극처럼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