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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기반’ 공시의 본격 도입과 과제

2025-08-27 13:00:02 게재

우리나라 재무정보 공시는 지난 수십년간 ‘문서 기반’에서 ‘데이터 기반’으로 꾸준히 전환되어 왔다. 특히 2023년부터 재무제표 주석에 대해 국제표준전산언어(XBRL. eXtensible Business Reporting Language) 공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한국 자본시장의 정보 인프라는 기존의 ‘읽는 공시’에서 ‘데이터 공시’로 질적 도약을 맞이했다.

XBRL은 기업 재무정보를 쉽게 생성 접근 분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재무보고용 국제표준전산언어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 변화가 아니라 AI 크롤링과 데이터 분석 기술의 발전, 그리고 기관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이 요구하는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 접근 수요가 결합한 결과다.

과거에는 투자자가 공시 문서를 직접 열람하며 분석해야 했지만 이제는 기계가 구조화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가공해 분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2023년 ‘재무공시 선진화 추진 TF’를 출범시켜서 연착륙 방안을 모색해왔다.

‘읽는 공시’에서 ‘데이터 공시’로 질적 도약

제도 도입 배경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정보비대칭 해소, 둘째, 비교가능성 제고 마지막으로, 시장 효율성 강화로 요약된다. 주석 정보는 기업가치 평가에 핵심적이지만 텍스트 형태로는 분석과 해석에 대한 접근 비용이 컸다. XBRL은 국가·기업 간 회계처리 차이를 보완해 비교가능성을 높이고, 데이터 추출·분석 속도를 개선해 투자자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올해부터 개별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금융업 상장사는 반기 보고서를 시작으로 XBRL 주석을 의무 제출해야 한다. 비금융 상장사는 2023년도 사업보고서(2024년 제출분)부터 의무화되었고, 2024년에는 자산 5000억~2조원 기업으로 확대되었다. 대형 금융사(자산 10조원 이상)는 2025년 반기보고서부터 적용되며 향후 자산 1000억원 미만 기업까지 단계적 확대가 예정되어 있다. 금융지주에서는 KB·신한·우리·하나 등 4곳이, 은행에서는 중소기업은행과 카카오뱅크가 포함됐다. 증권사는 미래에셋·삼성·한국투자 등 10곳이 대상이다.

감독당국의 노력으로 XBRL 제도는 빠르게 확산되었으나 현장에서는 데이터 품질 미흡이 지적된다. 태깅 오류, 정보 누락, 불일치, 중복 표기 등이 나타나며 일부 국제표준규칙 자체 오류도 보고되고 있다. 앞선 문제는 제도가 확대됨에 따라 나오는 당연한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분명히 감독당국이 XBRL 주석 공시 확대를 위해 큰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지만 이제는 감독당국이 이러한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다음 스텝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감독당국은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줄이고 XBRL을 확산시키기 위해 무료 편집기(소프트웨어)를 제공해 왔다. 이러한 편집기는 기업의 XBRL 도입 비용을 절감하는 등 제도 안착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공시대상이 늘수록 하나의 편집기로는 다양한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다. 특히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이 지속가능성 공시(IFRS S1, S2)까지 XBRL 확장을 준비하는 만큼 민간 소프트웨어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에 감독당국도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XBRL 주석 공시가 정착 단계에 들어선 만큼 민간 시스템과 감독당국 시스템의 병행 사용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마다 전략은 다르다. 비용 절감을 중시하는 기업도 있고, 더 높은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신속한 시스템을 선호하는 기업도 있다. 글로벌 경쟁을 위해서도 민간 인프라 확대가 필요하다.

다만 민간 소프트웨어 품질 관리 우려도 있다. 미국 데이터품질위원회(DQC, Data Quality Committee)는 제출 데이터를 검증 규칙으로 점검해 오류를 최소화한다. 이처럼 민관 협력 기반 품질 관리 덕분에 미국은 다양성과 경쟁을 유지하며 신뢰성을 확보했다. 한국도 장기적으로 이해관계자 간 소통 채널을 마련해 민간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개방적·협력적 생태계 구축 고려할 때

XBRL 주석 공시는 한국 자본시장의 정보 인프라를 한 단계 진전시킬 제도다. 현재까지 감독원이 충분한 역할을 수행했으나 성숙단계로 넘어가면 자연스럽게 시장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야 한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시장참여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정착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감독당국과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개방적·협력적 생태계 구축을 고려할 때이다.

손 혁 계명대학교 교수 세무회계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