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적극적인 시장개입 강화 ‘우려’
미 정부 인텔 지분 인수 … 전례 없는 연준 이사 해임
지역 연은 장악 등 연준 독립성 훼손에 투자심리 위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이 강화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최근 미국 행정부는 인텔 지분을 인수하고, 역사상 전례 없은 연방준비제도 이사를 해임 통보했다. 또 내년 초에 있을 지역 연방은행 총재 임명 과정에도 개입할 가능성이 커지는 등 연준 독립성 훼손 우려 확대에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다.
◆1913년 연준 설립 이래 처음 연준 이사 해임 통보 = 2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리사 쿡 연준 이사를 전격 해임한 자리에 “후임에 훌륭한 인물들을 고려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일 쿡 이사의 해임 사유가 충분하다고 설명하면서 해임 통보문을 공개했다.
대통령이 연준 이사를 해임 대상으로 삼은 것은 1913년 연준 설립 이래 처음이다. 연준 이사의 임기는 법과 규정으로 보장되어 있어 즉각적인 교체는 불가능하다. 연방법상 연준 이사는 14년 임기를 보장받으며 대통령이 임의로 해임할 수 없고,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만 해임이 가능하다. 쿡 이사의 임기는 2038년까지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을 장악해 금리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쿡 이사를 해임했다며 평가했다. 다음 달 16~17일 열리는 연방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앞두고 금리 인하를 거듭 압박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또, 쿡 이사를 해임하고 후임에 ‘충성파’ 인사를 앉힐 경우 7명의 연준 이사 중 제롬 파월 의장과 이사 2명을 제외한 4명을 자신이 임명한 인사로 채우면서 연준에 대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
월가와 미 언론들은 우려를 나타냈다.블룸버그는 “중앙은행 독립성은 세계적으로 성공을 입증한 제도적 장치인데 트럼프행정부는 연준에 금리 인하를 강요하고 파월 의장과 쿡 이사의 해임을 시도했다”며 “이는 기대와 정반대 결과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연준에서 비둘기파적 인사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향후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연준이 대통령에 굴복하는 것처럼 비춰지면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인플레이션 억제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면서 장기금리가 오히려 상승할 소지가 있다. 트럼프 관세 및 재정정책 여파의 부담에서 연준이 경기 연착륙을 유도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오히려 더 자신에게 더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장악을 시도하는 것이며, 금리인하 유도를 위해 쿡 이사의 해임을 통보했다고 평가했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또 “트럼프 영향으로 금리 인하가 가속화되면 단기 국채금리는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의 반등 우려에 따른 장기국채 금리 급상승 등이 현실화 될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와 관련한 채권시장 반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 연은 총재 임명까지 불확실성 커질 전망 = 내년 1분기에는 지역 연은 총재 관련 불확실성도 커질 전망이다. 12개 지역 연은 총재 모두 5년마다 재임명 과정을 거치는데 다음 임기 종료 시기는 2026년 2월 말이다. 각 연방은행의 이사회가 총재를 재임명하고, 연준 이사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지역 연은 총재가 교체된 전례가 없고 가능성도 낮다. 하지만 이사회의 과반이 트럼프 측 인사로 구성된다면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시나리오다.
◆“트럼프는 계획경제주의 총사령관” = 미 정부는 최근 인텔의 최대 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텔 CEO 사임을 요구한 지 15일 만이다. 인텔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인텔에 지급하기로 약속한 89억달러(약 12조4000억원)의 보조금을 지분 9.9%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정책을 통해 자국 우선주의 및 공급망 재편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AI 사이클을 포함한 디지털 경제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미국 디지털 기업에 과세 혹은 규제를 하는 국가에 추가 관세는 물론 반도체 수출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재정 및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산업정책 그리고 기업활동에 있어 정부의 개입주의 강화하면서 시장을 재편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케빈 하셋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인텔에 이어 앞으로 미국 정부가 다른 반도체 기업이나 다른 산업의 기업 지분도 취득하는 거래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히는 등 미국 정부의 개입주의 정책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을 ‘계획경제주의 총사령관’(Dirigiste-in chief)으로 호명하기도 했다.
◆강력한 중국 견제 의도 =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통화 및 기업 부문까지 행정부가 적극적 개입을 나서고 자국 기업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보호주의 정책과는 다른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시장 개입주의를 이해해야 한다”며 “일련의 트럼프 대통령의 시장 개입주의 강화는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의 배경에는 강력한 중국 견제가 있다. 박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유사한 적극적인 시장개입 정책을 통해 정말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며 “또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미국 재정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목적도 저변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다른 중요 혹은 핵심 기업에 대한 지분 취득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은 우려 사항이다. 박 연구원은 “반도체 보조금을 받고 있는 한국 반도체는 물론 향후 관세협상 합의 과정에서 약속한 주요국의 대미 투자에 있어서도 미국 정부가 지분을 요구할 개연성이 높아졌다”며 “기업의 자율성이 훼손되고 미국 정부 입김이 기업경영에 미칠 수밖에 없다면 기업 경영활동과 관련된 불확실성은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