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공화당’ 여섯 갈래로 나뉜 속사정
마가, 기술 우파, 마하(MAHA)까지
WP, 6색 연합의 현재와 미래 조명
26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다변화한 공화당 내부를 여섯 개의 주요 계파로 분류하며 ‘트럼프 연합’의 이면을 조명했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에서 다양한 배경의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전통적 백인 보수층뿐 아니라, 교육 수준이 낮은 저소득 노동자층, 반정부 정서가 강한 자영업자, 기독교 근본주의자, 기술 업계 엘리트, 민주당에서 이탈한 비주류 인사들까지 한데 묶었다. 그 결과 공화당은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수용하는 ‘빅 텐트’ 정당으로 변모했다.
문제는 이들 사이에 뚜렷한 정책 갈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관세, 이민, 낙태, 예산, 해외 군사 개입 등 거의 모든 현안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숱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연합을 가능하게 만든 중심축은 트럼프 개인의 카리스마다. 그의 독특한 리더십, 직설적 언사, 엘리트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는 전략은 계파 간 충돌을 일시 봉합하는 접착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그가 정치 무대에서 물러나거나 영향력이 약해진다면 느슨한 연합은 언제든 분열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공화당을 구성하는 여섯 개 주요 계파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마가(MAGA) 포퓰리스트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트럼프의 대표 구호에서 이름을 딴 이들은 주로 노동자 계층으로 구성돼 있다. 반이민, 반세계화, 반엘리트 정서를 공유하며, 트럼프를 종교적 상징처럼 숭배한다.
마가 지지자들은 트럼프 유세에 트레이드마크인 붉은 모자를 쓰고 몇 시간씩 줄을 서며,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주장에 가장 강하게 동조한다.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조지아), J.D. 밴스 부통령, 스티브 배넌 등이 이 진영을 대표한다.
둘째는 전통 공화당이다. 자유시장 경제, 낮은 세금, 규제 완화, 강한 국방 등 레이건 시절부터 이어온 공화당의 원류다. 기업계와 밀접하며 고소득층을 위한 감세 정책과 자유무역을 중시한다. 다만 최근에는 마가의 반세계화 노선에 밀려 영향력이 줄었다.
고전적인 보수 가치를 강조하는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 존 튠 상원 원내대표(사우스다코타) 같은 인물들이 재건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관세에 반대하고 이민에 비교적 유연한 입장을 보인다.
셋째는 ‘작은 정부’ 보수주의자들과 재정 긴축론자들이다. 이들은 정부 지출을 극단적으로 경계하며 연방정부의 적자를 주요 이슈로 삼는다.
랜드 폴 상원의원(캔터키주), 토머스 매시 하원의원,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사회 이슈에선 보수적이지만, 경제적 자유와 군사적 개입 축소를 함께 주장한다. 트럼프의 대규모 재정 지출과 관세 정책에 비판적이며 당내에서도 일관된 반대 의견을 내온 진영이다.
넷째는 종교적 우파다. 복음주의 개신교와 보수 가톨릭 인사들로 구성된 이들은 낙태 반대, 동성혼 반대 등 보수적 도덕규범을 정치에 적극 반영하려 한다.
트럼프는 이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2016년 승리했지만 최근에는 영향력이 다소 줄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루이지애나), 제임스 랭크포드 상원의원(오클라호마), 낙태반대 운동 지도자 마조리 대넌펠서 등 주요 인물들이 속해 있으며,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을 통해 자녀 세액 공제 확대, 낙태 시술소 지원 중단 등 정책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다섯째는 기술 우파다. 실리콘밸리의 일부 인사들이 여기에 포함되며, 인공지능(AI), 암호화폐, 생명공학 등에 대한 규제 완화를 지지한다.
일론 머스크가 한때 대표 인물이었지만 트럼프와의 갈등 이후 후퇴했고 현재는 페이팔 출신 데이비드 색스, 앤드리슨 호로비츠 공동창업자 마크 앤드리슨 등이 주요 인물로 부상했다. 이들은 고숙련 노동자 이민 확대에 찬성하며 마가와 충돌하기도 한다.
다만 하나의 조직화된 계파라기보다는 영향력 있는 개인들의 집합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지막 여섯째는 마하(MAHA: Make America Healthy Again) 및 민주당 전향자들이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와 털시 개버드 등이 대표 인물로 건강과 의료 정책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
이들은 백신 회의론, 식품 안전 문제, 제약 산업에 대한 불신 등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트럼프의 반기득권 이미지를 통해 공화당에 합류했다. 민주당과 거리를 둔 유권자, 건강 이슈에 민감한 젊은 층, 대중문화계 일부 인플루언서들이 이 흐름에 가세하고 있다.
이처럼 트럼프는 ‘이질적인 집단의 정치적 동거’를 가능케 했지만 이는 언제든 갈등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가 이끄는 동안은 카리스마가 갈등을 눌렀지만 그 이후를 장담하긴 어렵다는 의미다.
트럼프의 전 수석 전략가 스티브 배넌은 이 연합을 1930년대 루즈벨트의 ‘뉴딜 연합’에 비유했다. 다양한 계층의 긴장과 충돌 속에서도 공통의 적을 향해 결집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일부 보수 논객들은 이 연합이 단기적으론 유리할 수 있지만 결국 ‘내부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넓어진 외연은 분명한 자산이지만 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향후 정당의 생존 방향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