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가자시티 재장악 가속
트럼프, ‘전후 구상’ 논의
국제사회 우려와 규탄 커져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북부의 핵심 지역인 가자시티 장악을 위한 본격적인 군사 작전을 예고하며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은 162사단 예하 기바티여단이 가자시티 외곽과 인근 자발리아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격전을 벌인 끝에 테러용 무기 저장고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작전에는 테러 시설 해체와 병력 이동을 담당하는 607공병대대가 처음 투입됐다. 이 부대는 지난 22개월간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 창설된 조직으로 가자지구 전쟁의 장기화를 반영하는 조치로 평가된다.
이스라엘군은 앞서 지난 22일 가자지구 서부에서 하마스 정보기관 수장 마무드 알아스와드를 공습으로 제거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가자 북부 주민들에게는 남부로의 이주를 촉구하며 사실상 대피 명령을 내렸다.
이스라엘군 아랍어 대변인 아비차이 아드라이는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가자시티를 떠나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남부로 이동한 가족은 더 많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부에 수용 공간이 없다는 말은 거짓”이라며 알마와시 난민촌 등 아직 여유 공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피란민을 위해 남부에 구호품 배급소 2곳을 추가해 총 5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전쟁 장기화로 병력 부족에 직면한 이스라엘군은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아 온 초정통파 유대교도 ‘하레디’에 대한 징집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에얄 자미르 참모총장은 이날 가자지구를 시찰한 후 동원 기간이 연장된 예비군과의 대화에서 “이스라엘의 안보는 국민 전체의 완전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같은 부담을 져야 하며, 안보는 시민의 의무이자 국가의 명령”이라고 말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자미르의 이 같은 발언이 하레디 공동체를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레디 지도층은 여전히 전통 유대교 학교(예시바) 학생의 입대를 반대하고 있지만, 이스라엘군은 이달 초 하레디 병사로만 구성된 첫 부대인 ‘하스모네안여단’의 군사훈련 수료식을 열며 분위기 전환을 시도 중이다. 18~24세 하레디 청년 약 8만명 가운데 현재까지 입대한 인원은 약 2700명에 불과하다.
같은 날 미국 백악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 전후 구상’을 주제로 한 회의를 주재했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이 회의에서 기근 상황에 처한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확대 방안이 논의됐다고 보도했다. 회의에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와 트럼프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참석했으며, 하마스 퇴출 이후의 가자 통치 구조에 대한 논의도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다만 실제로 통치 구조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뤄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매우 포괄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블레어 전 총리와 쿠슈너가 수개월간 이 계획을 논의해왔다고 전했다. 백악관의 개입은 전쟁 지속에 부담을 느끼는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에게 ‘휴전 수용’을 위한 정치적 명분을 제공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제사회 역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작전 방식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을 제외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4개 이사국은 공동 성명을 통해 “가자지구의 기근은 인위적 위기”라고 규정하며 이스라엘의 구호물자 제한 조치를 즉시 해제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기아를 전쟁 무기로 사용하는 행위는 국제법상 금지돼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유엔 기구와 비영리단체들 최근 보고서를 통해 가자지구가 식량 불안정 최고 단계인 ‘기근(Famine)’ 상태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