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첨단산업 육성·관세 부담 해소에 중화권 증시 강세
부진한 경제지표에도 저축 급증 등 유동성↑
경기 펀더멘털 불확실성 해소, 추가 랠리 좌우
중국 상하이종합지수가 깜짝 랠리를 펼치며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의 첨단산업 육성 정책으로 기술주 종목이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미·중 관계가 소강상태를 지속하고 관세부담이 해소된 영향도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가계 저축이 급증하는 등 유동성은 증가한 점도 시장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다만 강세장 지속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0%대가 이어지는 등 경기는 침체 수준이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중국 경기 펀더멘털에 대한 불확실성 해소가 중국 증시 추가 랠리를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반기 증시 상승률 12% =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중국 상하이 종합지수는 전일 3800.35로 장을 마감하며 7월 이후 10.3%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26일에는 장중 3888.60까지 올라가며 1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이날 상승률은 12.9%에 달했다. 이 기간 미국 S&P 4.5%, 일본 닛케이 5.0%, 한국 코스피 3.8% 등 주요국 증시를 크게 앞질렀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중국 본토 주식 시가총액은 1조달러(약 1400조원)가량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강세장의 원인으로 우선 풍부해진 유동성을 꼽았다. 중국 정부의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로 풀린 유동성이 부동산과 예금에서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는 ‘머니무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인민은행에 따르면 7월 한 달간 가계 저축 잔액은 1조1000억위안 감소했고, 비은행(증권·펀드) 예금은 2조1400억위안 증가했다. 상하이종합지수는 개인투자자 비중이 약 90%로 미국(20~30%)에 비해 크게 높다. 상하이종합지수 기준 주간 거래량과 신용잔액 모두 최근 15년 새 최대 수준에 근접했다. 골드만삭스는 “중국 가계 금융자산 중 22%만 펀드나 주식 등에 투자하고 있다”며 “10조위안 이상의 투자 여력이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컨설팅업체 지벤어드바이저는 “중국 투자자들이 채권을 정리하고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SBC의 헤럴드 반 더 린데 아시아 최고 주식 전략가는 “역풍을 맞으면서도 현금을 쌓아두었던 중국 가계가 초과 예금을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HSBC에 따르면 중국 가계의 저축은 현재 총 160조위안(22조달러)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 주식 시장 전체 시가총액의 3분의 1이 넘는 규모다.
◆T10 기술주가 상승세 견인 = 중국 증시는 기술주가 상승세를 견인하고 있다. 실제 8월 중국 A증시에서 기술주 중심의 창업판지수가 15.2%, 과창판50지수가 19.1% 급등했다. 상승률 상위 섹터도 통신설비, 컴퓨터·주변설비, IT·설비소재, 반도체·설비, 자동차부품, 소프트웨어, 정보통신기술 등 첨단산업 관련 섹터가 최상위를 차지했다. 이를 주도하는 것은 중국 10대 기술 기업을 말하는 ‘T10(Terrific 10)’이다. T10이란, BYD(비야디)·알리바바·텐센트·샤오미·메이투안·SMIC·지리차·바이두·넷이즈·징둥닷컴이다. 최근 1년간 상승률을 평균 내면 81%에 달한다.
여태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중국 증시 강세 배경으로 하반기 첨단산업 육성 정책과 미 연준의 금리인하 기대감을 꼽았다. 여 연구원은 “중국 A증시의 강세 흐름 전개는 먼저 하반기 4중전회를 비롯한 정치 이벤트에서 첨단산업 육성 관련 정책들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며 “미국 연준의 금리인하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지난해 9월 말 미국 연준의 빅컷 이후 나타났던 강세장 재연출 기대감이 증시의 상승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홍콩 증시 상승세로 이어졌다. 본토 거래대금이 역대 두 번째로 3조위안을 돌파하는 등 개인 투자자금이 만든 유동성 랠리가 홍콩 증시로 옮겨 탄 것이다.
정정영 한국투자증권은 “중국 정부가 15차 5개년 계획을 통해 내수 촉진과 경제 체질 개선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에 신경제 성격이 짙은 홍콩 증시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그는 “바이두, 알리바바 등의 빅테크 반등 여력은 여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전한 경기부진은 실망 … 과열주의보 = 다만 중국 증시의 강한 상승 랠리는 다소 이례적이라며 증시 과열에 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직 중국 경제 펀더멘털이 개선되는 신호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중국의 7월 소매판매 증가율은 전년 동월 3.7%로 시장 예상치 4.6%를 크게 하회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고정투자 증가율로 8월 고정투자 증가율은 전년 동월 1.6%로 마침내 1%대까지 추락했다. 고정투자증가율 1%대는 팬데믹 당시를 제외하면 첫 1%대 증가율이다. 중국 투자가 사실상 정체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박 연구원은 “중국 증시의 유동성 랠리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9월 미 연준의 금리인하는 물론 중국 정부의 추가 부양책 실시 여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버블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종규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국 본토 증시가 경기 둔화 우려에도 풍부한 유동성 유입과 정부 정책 기대감에 상승하고 있다”며 “부동산 지표 악화와 관세 전쟁 이후 대미 수출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하반기 경기 하강 압력이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