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씨앗론’ 담은 이재명표 AI예산안…복지예산 대폭 올려
AI 대전환·R&D예산 역대 최대폭 증가 … “선도국가 도약할 마지막 기회”
지역화폐 등 대선공약 적극반영 … “검증 못하면 예산낭비 재탕” 우려도
이재명정부는 첫 예산안에서 재정의 ‘성장 마중물’ 역할을 강조하며 총지출 증가율을 8%대로 끌어 올렸다. 특히 미래성장동력 지원에 집중투자해 경제 성장을 극대화하고, 세수기반을 확대해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는 ‘선순환 구조’를 달성하겠다는 전략이다. 2%대였던 윤석열정부의 긴축재정 기조에서 극적으로 ‘유턴’한 것은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에 선도국가로 도약할 마지막 골든타임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선순환 구조를 한두 해 안에 이루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당분간 재정건전성 악화가 우려된다. AI 투자의 세밀한 계획이 수립되기도 전에 거액의 재정이 투입되면 고질적인 ‘눈먼 돈 나눠 먹기’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AI·R&D에 성장투자 집중 = 정부는 29일 발표한 728조원 규모의 2026년도 예산안을 잠재성장률 3%로 반등시킬 ‘씨앗’으로 삼겠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3일 “지금 씨를 한 됫박 뿌려서 가을에 한 가마를 수확할 수 있다면 당연히 빌려다 씨를 뿌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제시한 ‘재정 씨앗론’을 구체화한 것이다.
대표 사업은 AI다. 올해 3조3000억원 규모였던 관련 예산을 3배 이상인 10조1000억원으로 확대한다. 현실 세계에서 인지·판단·행동하는 AI 기술인 ‘피지컬 AI’ 선도 국가 달성을 위해 로봇, 자동차, 조선, 가전·반도체, 팩토리(공장) 등 주요 제조업의 AI 대전환을 이끈다는 계획이다.
AI·AX 대학원을 24개로 늘려 고급인재 1만1000명을 양성한다. AI 연산 작업에 필수인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1만5000장을 추가 구매한다. 연구개발(R&D) 예산은 19.3% 늘인 35조3000억원을 배정했다. 역대 최대 증가 폭이다. AI를 포함한 바이오(B), 콘텐츠(C), 방산(D), 에너지(E), 제조(F) 등 이른바 ‘A·B·C·D·E·F’ 첨단산업 기술 개발에 10조6000억원을 투입한다.
정부 주도 구조에서 벗어나, 민간이 함께 선두에 서는 구조도 강화한다. 100조원 이상 규모로 신규 조성할 ‘국민성장펀드’에 재정 1조원을 투입한다. 정부와 민간자금을 합쳐 조성되는 이 펀드로 AI·반도체 등 미래전략산업 투자를 확대한다.
범용인공지능(AGI) 시대 준비를 위해 민간주도형 연구기업(SPC)에 예산을 출자하고, 민간투자 유도를 위한 AI기업 전용펀드인 ‘AI 혁신펀드’에도 정부 출자를 확대한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늘어난 재원의 대부분은 R&D, AI, 초혁신경제 선도 사업 등 국가의 미래 성장잠재력을 제고할 분야에 집중 배분했다”고 설명했다.
◆확장재정으로 전환 = 내년 예산안의 전년 대비 총수입 증가율은 8.1%다. 윤석열정부 때 편성한 2024년(2.8%), 올해(2.5%) 예산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를 위해 110조원 규모의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연간 이자 비용만 36조원 수준이다. 국가채무는 1415조2000억원까지 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도 51.6%로 처음으로 50%를 넘어서게 된다.
재정을 과감히 투입하는 기저에는 ‘지금이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이재명정부의 판단이 작용했다.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투자 위축, 생산성 정체로 빠르게 하락하는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0%대 저성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라는 인식이다.
유병서 기재부 예산실장은 “5년간의 채무만을 관리하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투자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리스크가 있지만 투자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방향성은 민간에 맡겨야” 지적도 = 문제는 정부가 기대하는 ‘적극 재정→경제 성장→지속가능 재정’의 선순환 구조를 실현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확장 재정의 방향성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디테일’이 부족해 자칫하면 ‘모 아니면 도’인 도박성 투자가 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기업 상권이 이미 결정돼 한국은 AI 틈새 시장을 공략해야 하는데 그런 세밀한 계획 없이 재정부터 투입하는 정책이 옳을까 생각된다”며 “문재인정부 때 벤처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며 거액의 예산을 배정했다가 흐지부지됐던 일이 떠오른다”고 했다.
AI나 R&D의 특성상 성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선순환 구조가 완성되기까지 시차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AI 기술은 기대감이 큰 만큼 거품이 과도하게 끼고 있다는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 분야에 ‘올인 베팅’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만약 우리가 의도한 대로 AI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세출이 세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경로에서 완전히 벗어날 우려도 있다”며 “너무 한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한 뒤 성과를 이루지 못할 때 오는 악영향도 걱정된다”고 했다.
대규모 예산 투입의 부작용이 반복될 우려도 제기된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AI라는 이름에 벌떼처럼 나눠먹기 식으로 덤비는 기업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는 성과 중심으로 운영하겠다고는 하지만, 특히 AI는 아직 검증할 수 있는 전문가가 없어 예산이 낭비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지역화폐 등 ‘이재명표 예산’도 반영 = 이번 예산안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도 적극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역화폐예산 등 복지 관련 예산이 크게 늘었다. 생계급여가 올라 4인 가구 기준으로 월 수급액이 처음 200만원(207만8000원)을 넘어선다. 아동수당 지급 나이를 만 7세 이하에서 8세 이하로 상향한다. 지급액수는 월 10만원에서 최대 13만원까지 늘린다.
소득 6000만원 이하 19~34세 청년이 월 50만원 한도인 납입금을 내면 정부가 6~12%를 매칭해 지원하는 ‘청년미래적금’을 신설한다. 저소득 청년에게 월세 20만원을 24개월 동안 지원하는 청년 월세지원을 상시화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농식품바우처·에너지바우처 지원 대상도 넓힌다. 소상공인을 위한 경영안정바우처 25만원도 지급한다.
인구감소 지역 6개 군을 공모해 주민 24만명에게 월 15만원을 지급하는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을 시범 도입한다. 월 5~6만원으로 대중교통을 월 20만원까지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정액 패스’도 새 정부에서 도입되는 현금성 지원 중 하나다.
정부는 내년에는 24조원 규모의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지원하고, 지역별로 국비보조율도 상향한다. 온누리상품권은 디지털 4조5000억원, 지류 1조원 규모로 발행한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