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폭주에 글로벌사우스 결집

2025-09-01 13:00:10 게재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

협력 다짐·반서방 세과시

전 세계를 상대로 일방적인 상호관세 부과 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폭주에 반서방 세력들이 결집하고 있다. 특히 중국·러시아·인도 등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로 불리는 국가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달 31일 개막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는 이런 기류를 과감없이 드러냈다. 중국 톈진에서 개막한 이번 회의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모하메드 무이주 몰디브 대통령 등 20여 개국 정상과 10여 개 국제기구 대표가 참석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글로벌사우스의 연대는 지금의 불확실한 국제정세 속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SCO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SCO를 “신흥국과 개도국의 공동 번영을 위한 협력 플랫폼”이라 규정하고 “다자주의의 기치 아래 평화와 안정을 지킬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결속도 재확인됐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만찬 전 비공식 회동을 갖고 국제정세와 SCO의 미래 전략을 논의했다. 중국 관영 언론은 이를 ‘굳건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보도했다. 러시아는 SCO 회의에서 미국의 패권주의와 단극 질서를 비판하며 중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강조했다.

중국과 인도의 정상회담도 큰 관심을 모았다. 양국은 2020년 국경 분쟁 이후 냉각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시 주석과 모디 총리는 국경 갈등을 양국 관계의 전부로 삼지 말자는 데 공감하고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시 주석은 “중국과 인도는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두 국가이자 글로벌사우스의 중심축”이라며 “룽샹궁우(龍象共舞), 즉 용과 코끼리가 함께 춤추는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모디 총리도 “인도와 중국은 제3자의 간섭 없이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특히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로 인해 인도에 추가 관세가 부과된 상황에서 양국 간 협력 강화는 트럼프의 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대안으로도 해석된다.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 확대 등 독자적 외교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은 또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과도 연쇄 회담을 통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SCO 가입을 독려했다.

각국 정상들은 중국의 발전 모델과 시진핑 리더십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으며, 대만 문제 등 중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혔다. 키르기스스탄, 벨라루스 등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이번 SCO 정상회의에서는 2035년 개발 전략과 함께 ‘톈진 선언’을 채택해 회원국 간 경제·안보 협력을 구체화할 계획이며, 유엔(UN) 창설 80주년과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을 기념하는 공동 성명도 발표될 예정이다. 이는 SCO가 단순한 지역 협력체를 넘어 역사적·정치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글로벌 연대체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상회의 종료 이틀 뒤인 9월 3일에는 베이징에서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이 열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비롯해 북·중·러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일 것으로 예상돼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참석할 예정이다. 북·중·러 정상회동으로 이번 열병식 또한 SCO 회의에서 강조된 반서방 연대를 더욱 상징적으로 부각시키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그동안 SCO는 경제와 안보 중심의 지역 협력기구로 기능해왔지만 최근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대한 대항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트럼프식 일방주의가 불러온 예견된 반작용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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