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일탈회계 중단키로…이찬진 금감원장 “투명하고 원칙 중심으로”

2025-09-02 13:00:02 게재

금감원, 외부 전문가 참여 비공개 간담회에서 의견 수렴

2차 간담회 없이 내부적으로 잠정 결론, 이 원장 영향인 듯

삼성생명이 국제회계기준(IFRS17)에서 극히 예외로 인정하는 ‘일탈회계’를 영구히 지속하려는 것에 대해 사회적 논란이 커지면서 금융감독원이 일탈회계를 중단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1일 보험회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 직후 국제회계기준에 맞춰 정상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 원장은 취임 다음날인 지난달 19일 삼성생명 일탈회계 논란에 대해 회계부서 관계자들을 불러 상세한 보고를 받았으며 저녁까지 논의를 이어갔다. 이 원장은 이 자리에서 “투명하고 원칙을 중심으로 하자”는 취지의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 원장도 삼성생명 회계와 관련해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다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1일 “잠정적으로 방향을 잡은 상태”라며 “그래서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저희 입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원의 입장은 이번 기회에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으로 정리를 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난달 21일 회계법인 품질관리실장과 회계학과 교수, 회계기준원과 시민단체인 경제민주주의21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삼성생명의 일탈회계 적용이 적정한지에 대해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삼성생명의 일탈회계 적용이 정당하다는 의견뿐만 아니라 영구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과 국제회계기준에 맞게 일탈회계를 취소해야 한다는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금감원은 보험 관련 회계전문가들을 추가로 참여시키는 2차 간담회 개최를 검토했지만, 내부적으로 신속하게 결론을 내리자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이 원장의 결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삼성생명은 유배당보험 계약자들이 낸 보험료로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해서 보유하고 있으며, 해당 자산의 평가이익 중 계약자 몫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명목으로 회계처리하고 있다. 국제회계기준에서 정한 ‘보험부채’가 아닌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항목으로 재무제표에 표시하는 일탈회계를 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이 이를 인정해왔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자본으로 분류하려다가 사실상 부채인 ‘계약자 몫’을 표시하기 위해 ‘계약자지분조정’을 인정해준 것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이 올해 2월 삼성전자 주식 일부를 매각하면서 극히 예외로 인정했던 조건이 깨졌고, 일탈회계를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금감원, 삼성생명에 직접 조치 취할 수도 = 회계기준원과 함께 삼성생명 일탈회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경제민주주의21은 금감원의 ‘친삼성 행보’를 의심했다.

삼성생명 회계처리에 관한 시민단체의 질의서에 대해 금감원이 공식적인 회신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규정에도 없는 비공개 간담회를 개최한 이유와 비공식 내부 간담회의 결론이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데도 굳이 결론을 도출하겠다는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외부감사법에 따르면 회사의 회계처리기준을 정하는 것은 금융위원회의 증권선물위원회 권한이고, 회계기준원이 금융위의 위탁을 받아 △회계처리기준의 제정 또는 개정 △회계처리기준의 해석 △회계처리기준 관련 질의에 대한 회신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감독위원회 시절인 2000년에 회계기준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금감원도 질의회신을 할 수 있도록 했다”며 “금융위는 물론이고 감사원 감사, 대법원 판례를 통해 금감원에 질의회신을 할 권한을 있다는 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삼성생명과 관련한 시민단체의 질의서에 회신을 하기 보다는 삼성생명에 직접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질의회신을 하려면 모든 사실관계와 상황을 알아야 답이 나가는데 시민단체들의 질의한 내용에는 디테일한 사실관계가 없다”며 “회사(삼성생명)로 하여금 뭘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겠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고 그런 문제들까지 포함해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구체적 방법론에 관해서는 감독 규정에 관련된 것으로 할 것인지, 질의회신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하지 않았는데 향후 그 부분도 조만간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일탈회계 적용 극소수 = 삼성생명이 오랜 기간 일탈회계를 적용받고 있는 것과 달리 전 세계적으로 일탈회계 적용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일탈 기간이 길지 않다.

2009년 HSBC는 파생상품(외화표시 신주인수권)을 발행했으며 국제회계기준에서는 이를 파생금융부채로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국제회계기준 중 IAS 32는 주식, 채권, 파생상품 같은 금융상품을 회계상 ‘자본’으로 볼지, ‘부채’로 볼지 정하는 기준이다. 원칙적으로는 ‘확정된 현금 ↔ 확정된 주식 교환(확정-대-확정)’이 아니면 부채로 봐야 한다. 쉽게 표현하면 ‘정해진 돈을 내고, 정해진 주식 수를 받는 구조’가 아니면 회계상 부채로 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주인수권은 미래에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말하기 때문에 ‘확정-대-확정’ 요건을 갖추지 못해 부채로 봐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HSBC는 파생상품 발행 당시부터 손실이 발생하게 돼 회계처리 결과 4억7000만달러의 손실을 인식하게 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3억3000만달러의 이익이 발생하는 것이어서 회계기준대로 하면 투자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결과가 초래된다.

이 같은 회계처리가 경제실질을 왜곡할 수 있고 재무제표의 목적에 반한다고 보고, 지분상품(자본)으로 회계처리를 할 수 있도록 일탈회계를 인정해준 것이다. 하지만 이후 주주배정방식의 전환권 또는 신주인수권의 행사가격이 외화로 확정되더라도 자본으로 분류할 수 있도록 기준서가 개정됨에 따라 HSBC의 일탈회계는 없어졌다.

해외에서는 일탈회계를 인정하더라도 일회성으로 끝나고 IFRS 개정으로 연결된다. 반면 삼성생명의 경우 이 같은 일탈회계를 인정함에 따라 다른 생명보험사들도 동일하게 일탈회계를 적용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회계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탈회계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 적용하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삼성생명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보험사들이 다 따라하다 보니까 이제는 마치 보편적인 회계처리로 보이게 됐다”며 “해외에서 바라볼 때 국제회계기준 준수라는 관점에서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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