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강국주의와 K-방산의 대가
‘강국주의(혹은 강국론)’가 국가비전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1대 대통령 선거 10대 공약 중 첫번째로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을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인공지능(AI) 3강 도약, 글로벌 소프트파워 빅 5 문화강국의 실현, 글로벌 4대 벤처강국 실현, 그리고 K-방산을 국가대표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국민의힘은 ‘민간 및 기업주도 성장’을 앞세운 첫번째 공약의 선상에서 두번째 공약으로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AI·에너지(원자력) 3대 강국 도약’을 내세웠다. 또 열번째 공약으로 ‘북핵을 이기는 힘, 튼튼한 국가안보’를 표방하면서 ‘강한 대한민국’의 기치를 내걸고 ‘글로벌 K-방산 육성을 통한 선진강군 구현’을 제시했다.
지나온 역사를 훑어 보면 단순히 선거 때라 나온 허언이 아니다. 경향성을 띤 현재와 미래의 운동이다. 한국은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전쟁을 거친 직후였던 70여년 전쯤에는 세계 최빈국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닌 나라였다.
그러다가 박정희정권 시기 ‘잘 살아보세’라는 국가비전이 제시되었고, ‘개발도상국’의 위치에 올랐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에 이르는 전두환-노태우정권을 거치면서는 ‘선진국 구현’이라는 국가비전이 표방되었고 ‘중진국’론이 제기되기도했다.
국가비전으로 떠오른 '강국주의'
김영삼정권 때는 세계화를 통한 ‘일류국가’론이, 김대중정권 들어서는 ‘IT-지식정보 강국’론이 주창되었다. 노무현정권 시기에는 ‘소강국’론이 나왔다. 이명박-박근혜정권을 거치면서는 ‘금융강국’과 ‘문화강국’론 등으로 이어졌다. 문재인정권 때는 ‘경제강국’론이, 윤석열정권 때는 ‘AI 3대 강국’론이 나왔다.
한국은 최빈국에서 성장과 도약을 거쳐 세계 강국을 노리는 나라가 된 것이다. 세계국가발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눈부신 발전이다. 정권을 주고받으며 맡아온 양대 정당의 강국주의 표방과 지향은 그런 역사에 바탕한 생각이며 ‘진언’이다.
하지만 발전의 폐해도 크다. 부의 소득-자산 상위층의 독점심화에 따른 사회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가 핵심이다. 이런 폐해를 감안하면 분배와 평등의 진작을 통한 ‘균형국가’ 정도가 국가비전으로 제시될만도 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생활안정론’을, 국민의힘은 ‘평생복지론’을 내걸고도 있다. 모두 ‘지역균형발전론’을 주창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안보를 핵심가치로 하는 강국론의 뒷전에 위치해있다.
그런데 이전의 강국론 혹은 강국지향성과도 구별될 뿐만 아니라 전쟁까지 동반하는 국제질서의 군사화 흐름을 고려할 때 더 큰 문제를 갖는 게 있다. 바로 K-방산론에 바탕한 강국론이다.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기사(‘Meet the world's hottest upstart weapons dealers’ 8월 31일자)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방산 강국이다. 2025년 3월 기준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무기수출국(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무기판매상)’이다. 작년에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는 32억달러 상당의 천궁Ⅱ 지대공 미사일을, 페루에는 4억6000만달러 상당의 군함을, 루마니아에는 10억달러 상당의 자주포를 팔았다. 2022년에는 폴란드와 220억 달러 규모의 무기체계판매 계약을 맺었다. K-방산에 바탕한 강국론은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주식투자자들이 K-방산에 몰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K-방산 기댄 강국주의 표방이 치를 대가
양당은 K-방산 육성의 의미 구성을 달리 한다. 민주당은 경제강국을 위한 신성장동력의 차원에서, 국민의힘은 안보강국의 차원에서다. 하지만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대정당 모두의 K-방산론은 위험 요인을 갖고 있다. 왜 위험하냐고? 적어도 군사적 긴장이 강화되고 지속되는 상황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이상 남북한 대치국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혹은 동북아 차원에서만 군사적 긴장을 관리하면서 비전쟁 평화 상태를 유지하던 국가가 아니다. 이제는 글로벌 차원에서 군사적 긴장이 요구하는 비용을 지불해야하는 국가다. 전쟁을 선호하지는 않는다해도 ‘군사친화적 산업강국’임을 부정할 수는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K-방산에 기댄 강국주의의 표방이 한국의 미래에 어떤 대가를 요구할지도 면밀하게 검토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