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서 달러 패권 균열

2025-09-04 12:59:59 게재

위안화 강세·신흥국 비달러 채권 확대 … 투자자들 미국 자산 기피

100위안 지폐와 배경에 중국 국기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위안화가 달러 대비 10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의 절대적 지위에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위안화는 올해 들어 달러 대비 2.3% 상승해 1달러당 7.14위안을 기록,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 재선 이후 가장 강세를 나타냈다. 미툴 코테차 바클레이스 외환·신흥시장 거시전략 책임자는 “중국은 적어도 성의 있는 방식으로 위안화를 절하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미국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환율 흐름만이 아니다. 신흥국들의 차입 행태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가 4%대 중반에 고착되면서 달러 자금 조달비용이 커지자, 케냐·스리랑카·파나마 등 신흥국들은 달러 부채를 위안화나 스위스프랑으로 전환하거나 새로 발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틸리나 판두와왈라 콜롬보 소재 프런티어리서치 이코노미스트는 “자금조달 비용이 낮은 것이 위안화로 전환하는 주된 이유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케냐 재무부는 50억달러 규모 철도사업 차입금을 위안화 부채로 전환하기 위해 중국수출입은행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스리랑카 정부도 도로 건설 자금을 위안화로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파나마 정부는 지난 7월에만 약 24억달러에 해당하는 스위스프랑 대출을 확보해 달러 부채 대비 2억달러 이상의 이자 비용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펠리페 채프먼 파나마 재무장관은 “달러 자본시장에만 의존하지 않고 유로와 스위스프랑으로 국채 운용을 다변화했다”고 말했다. 콜롬비아도 달러 채권을 매입해 스위스프랑 대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아르만도 아르멘타 얼라이언스번스타인 글로벌경제연구 부사장은 “미국 국채 수익률 곡선이 가팔라지고 금리가 높아지면서 신흥국에 달러 자금조달은 더 큰 부담이 됐다”며 “따라서 더 비용 효율적인 선택지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투자 흐름에서도 달러 자산 회피 조짐이 나타난다. 스위스의 대형 사모투자사 파트너스그룹은 일부 아시아와 중동 국부펀드들이 미국 자산 노출을 최소화하려 한다고 밝혔다. 로베르토 카냐티 포트폴리오 솔루션 책임자는 “아시아 투자자들이 비미국 노출을 더 많이 찾고 있다”며 “일부는 유로화 계정을 원하거나 미국 은행이 아닌 곳에 예치 계좌를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잦은 관세 정책과 연준 압박이 불확실성을 키우면서 안정성을 중시하는 투자자들이 미국을 기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트너스그룹 최고경영자 데이비드 레이튼은 “변화가 매년 일어난다고 느껴지면 투자자들은 안정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세 가지 흐름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달러 중심 금융질서의 균열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위안화 강세는 중국의 전략적 신호, 신흥국의 비달러 채권 발행은 비용 절감의 필요, 아시아·중동 투자자들의 미국 자산 기피는 정책 불확실성의 반영이다.

단기간에 달러 패권이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환율·채권·투자 세 축에서 드러나는 탈달러 움직임은 달러의 지위를 서서히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미 달러 패권 균열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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