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공짜 대중교통’의 역설
지난 6월 수도권 지하철 기본요금이 1400원에서 1550원으로 인상됐다. 불과 2년 전에도 150원이 올랐는데 또다시 인상된 것이다. 고물가시대에 교통비마저 상승하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서민의 체감 고통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세계 곳곳에서는 대중교통 요금을 올리는 대신 아예 무료화하거나 파격적으로 인하하는 실험들이 이어지고 있다. “대중교통이 공짜라고?” 우리에겐 낯선 질문일지 모르지만 당연히 받아들이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은 2013년 대중교통을 무료로 전환했다. 매년 1200만유로의 운임수입 손실이 발생했지만, 대중교통 천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증가해 등록인구가 2012년 41만6000명에서 2018년 43만7000명으로 5년간 2만명이 넘게 늘었다. 전입인구 증가는 매년 2000만유로에 달하는 세수증가로 이어졌다. 무료교통이 단순히 적자를 감수하는 복지정책이 아니라 도시경쟁력을 강화하고 재정건전성까지 높이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은 완전무료 대신 파격적인 요금인하를 택했다. 2012년 ‘365유로 1년 정기권’ 제도를 도입해 하루 1유로라는 부담 없는 금액으로 1년간 모든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2019년 기준 빈 전체 인구의 43%인 82만명이 이 정기권을 구매했다. 그 결과 시민들의 자가용 이용률은 줄고 대중교통 이용률은 늘었다. 이처럼 대중교통 요금 혁신만으로도 도시 전체의 이동방식을 바꿔낼 수 있다.
룩셈부르크는 2020년 세계 최초로 국가 단위 대중교통 전면 무료화를 단행했다. 정부 부담 운영비는 2020년 약 5억9000만유로에서 2024년 9억유로로 크게 늘었지만 그 효과도 컸다. 트램·기차·버스 등 대중교통 이용객수가 꾸준히 늘어 특정 노선에서는 12~18%의 승객 증가가 확인됐다. 룩셈부르크의 실험은 대중교통을 단순히 ‘이동수단’이 아닌 ‘시민 모두의 기본권리’라는 인식을 공고히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농촌과 중소도시의 무료버스 실험
우리나라 역시 농촌과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무료버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023년 1월 경북 청송군이 관광객까지 포함한 시내버스 전면 무료화를 전국 최초로 시행한 이래, 그해 9월 전남 완도군이 뒤를 이었다. 2024년에는 봉화군 진도군 영암군이 합류했으며, 2025년 들어서는 문경시가 시 단위 최초로 무료화를 단행했다. 이는 이제 전국적인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정책은 단순한 교통비 절감 효과를 넘어 고령자와 청소년 같은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관광객 유치와 지역 상권 활성화까지 이끌고 있다.
무료화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흐름이 바로 버스공영제다. 전남 신안군은 2007년 임자도에서 시범 운행을 시작한 뒤 2013년 전국 최초로 버스 완전공영제를 전면 도입했다. 현재 117개 노선, 65대 차량을 연간 67만명의 주민이 이용한다. 특히 이용객의 80% 이상이 고령자와 학생 같은 무임·우대층이다. 이는 교통 소외지역의 주민들까지 품어 ‘누구도 버스로부터 배제되지 않는다’는 공공교통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대중교통을 단순히 운영주체의 수익이나 요금문제로만 봐서는 안된다. 대중교통은 도시의 지속가능성과 기후위기 대응, 그리고 사회적 약자의 이동권 보장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해외와 국내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무료화든, 공영제든, 정액권이든 핵심은 누구나 공정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동의 권리는 누구에게나 부여된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독일 ‘9유로 티켓’ 실험이 시사하는 것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 대중교통 이용률은 매우 낮다. 전국적으로 대중교통 이용을 크게 늘리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전국 어디서나 통용되는 월 정기권 ‘K-패스+’를 만들어 고속철도를 제외한 모든 대중교통을 청소년은 월 1만원, 성인은 월 2만원에 무제한 이용하게 하면 어떨까. 독일이 2022년 여름 석 달간 ‘9유로 티켓’으로 대중교통 이용을 폭발적으로 늘린 뒤 49유로 티켓으로 제도를 정착시킨 것처럼, 우리도 파격적인 가격으로 이용 문화를 확산시키고 이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제도를 안착시킬 수 있다.
대중교통 우대와 무료 정책은 수도권에 집중된 교통 인프라 격차를 완화하며, 대중교통이 열악한 비수도권 지방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대중교통을 단순한 서비스가 아닌 권리로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지역과 도시의 삶을 회복시키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