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AI시대 개척하는 일본 전자부품산업
일본 전자부품산업은 세라믹 콘덴서 등의 첨단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무라타제작소 교세라 TDK Nidec 등 세계 유수의 일본 전자부품기업이 없으면 전자제품뿐만 아니라 자동차 비행기 군수물자의 생산도 못하게 될 정도다.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인 반도체의 경우도 신흥국인 중국의 맹렬한 추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 전자부품기업이 선행자로서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비결에 주목할 시점이다.
일본 전자산업은 가전 반도체 등에서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에 절정기를 구가한 후 1990년대 후반 이후 급속도로 약해졌지만 전자부품 분야에서 강한 모습을 유지해온 것은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이는 일본 전자산업이 도약하는 과정에서 가전 휴대폰 등의 제조기업과 전자부품기업이 긴밀하게 분업하면서 세계 정상의 지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가전 분야 등에서 일본 유수의 브랜드들이 쇠퇴하는 가운데 일본 전자부품기업들은 발 빠르게 한국 대만 등의 신흥세력과 분업관계를 강화하면서 세계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일본 전자기업 전체로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7.4%에 불과하지만 전자부품은 32.7%에 달한다
일본 전자부품 산업, 세계 최강의 경쟁력
일본 전자부품기업은 자사가 강점을 가진 특정 분야에 집중해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국 전자기업과도 협력해 높은 세계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강점 분야의 기술력 강화에 주력해왔던 것이다.
또한 일본 전자 완제품 기업들은 1990년대 이후의 디지털 혁명에 대한 대응이 늦어졌으나 전자부품 기업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예를 들면 애플 등 세계적인 기업이 신제품을 준비할 경우 이와 관련된 새로운 부품의 개발을 위해 가장 먼저 협의하고 협력하는 것은 일본의 전자부품기업이라고 한다. 일본기업이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세라믹 콘텐서(MLCC)는 스마트폰에 1000개 이상, 전기차에 약 1만개, 인공지능(AI) 서버에 1만 ~ 2만개나 탑재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전자부품기업은 강점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주도해 많은 고객 기반을 기초로 하면서 기술의 변화를 선견하고 디지털 혁명에 계속 대응하는 데에 주력해왔다. 이러한 기술경영을 통해 일본기업은 전자부품의 소형 대용량화, 절전기술의 개발에서 성과를 보여왔다.
전자제품은 소형 대용량화 고성능화가 중요하고 이를 통해 각종 제품이 혁신되고 신개념의 제품들이 보급되어 왔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 확산을 뒷받침한 일본 기업 중 교세라는 고성능 세라믹 소재와 중공 구조(내부에 빈 공간을 두어 성능 향상)를 통해 부품 소형화와 경량화, 방열성 향상에 기여했다. 이는 통신 모듈의 안정성과 스마트폰의 설계 자유도를 향상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일본전산은 미세 진동 모터로 촉각 피드백을 구현했다.
이러한 첨단전자 부품 분야의 중요성을 고려해서 일본정부는 2024년에 MLCC 등 첨단 전자부품을 ‘특정 중요물자’로 지정해 공급력 확보와 기술 유출 방지를 국가적인 프로젝트로 지정했다.
10년 앞서는 기술력의 구축에 주력
세계 최대의 점유율을 가지고 많은 첨단 고객과 분업하면서 기술의 트렌드 변화를 파악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데 일본 전자부품기업들은 주력해왔다고 할 수 있다. 무라타제작소의 경우 최근에는 생성형 AI용 그래픽 처리 장치(GPU) 등에서 주요 고객과 제품 로드맵을 공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이를 바탕으로 5~10년 후의 미래를 구상하고 이러한 미래상에서 현재의 과제를 역산해 개발 방향을 결정하는 백캐스팅 수법도 활용하고 있다. 기존의 강점 기업은 종래의 고객과 기술의 연장선상에서 제품과 기술의 로드맵을 구상하기가 쉽지만 이는 새로운 고객 수요를 놓칠 수 있다. 최근의 큰 변화인 생성형 AI 등의 신기술에 맞추어서 자사 제품의 개발 방향을 전환하는 노력이 중요한 것이다.
무라타제작소에 따르면 전자산업의 큰 변화 흐름은 대체로 15년 주기로 발생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회사는 2030년에 도래할 다음 기술혁신의 핵심 키워드를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디지털트윈으로 잡고 혁신 중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불량품이 발생했을 때 이미 AI가 그 원인을 자동으로 분석해 주는 시대가 되었다. 미세한 조정 작업에 관해서는 여전히 사람의 작업이 필요하지만 이 부분도 앞으로 자동화되어 생산공정의 개선 자체도 AI가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 분야에서는 시계 안경 반지 등 웨어러블 기기에서 생체데이터가 일상적으로 수집되고, 의사는 그것을 보고 진찰을 한 뒤 처방전을 발행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 개인의 건강상태에 맞춘 치료약이 그때그때 자택으로 배송되기도 할 것이다. 교통 분야에서는 자동차 및 신호등의 카메라와 센서가 고도화되어 충돌사고는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무라타제작소와 같이 일본 전자부품기업들은 AI가 각 분야에 침투하는 미래사회에서 전자부품 제조업체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미리 기술의 축적에 나서고 있다. 완제품 기업의 제품 콘셉트나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기도 전에 미래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기반으로 부품 기술이나 향후 중요해질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재의 기술격차뿐만 아니라 10년 앞선 기술의 방향을 탐색하면서 미리미리 필요한 역량을 축적해 나간다면 후발 경쟁 기업을 압도할 수 있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 시대의 첨단 전자부품의 경쟁력 추구
향후 AI 시대를 바라보면서 일본 전자부품기업들은 AI 자체의 진화와 함께 이를 활용한 각종 응용 분야의 발전을 예상하고 선행 기술의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예를 들면 AI의 문제인 막대한 전력소비량을 억제하기 위해 광전융합 기술이 초점이 되고 있다. 통신에서 쓰이는 광신호를 전자기기에서 전자신호로 바꾸는 현재의 시스템은 전력소모가 크기 때문에 이를 혁신하려는 것이다.
전자기기나 반도체 칩에서 광신호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첨단 전자부품의 진화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무라타제작소는 광전융합 전자부품의 개발에 선행적으로 나서고 있다. 동사는 반도체 칩 주변에 광학부품을 복수 배치하는 광전융합 분야의 첨단 기술인 CPO(Co-Packaged Optics) 관련 특허를 획득한 상태다.(닛케이, 2025.8.6.)
또한 자율주행 분야를 고려해서 고신뢰 센서, 저지연 통신, 정밀통신 등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도요타 계열의 덴소는 센서·모터·통신 모듈을 AI 기반으로 통합 제어하는 자율주행용 ECU(Electronic Control Unit) 및 LiDAR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미쓰비시전기는 AI 연동형 스마트 공장을 위한 고정밀 모터, 센서의 공급에 나서고 있다. 오므론은 의료기기의 디지털화 원격통신을 위해 초소형 고정밀 생체 신호 센서 및 초소형 모터, AI 내장형 혈압계 및 부품 개발에 주력 중이다.
이와 같이 일본 전자부품 기업들이 자사의 강점을 철저하게 심화시키면서 새로운 트렌드, 새로운 고객에 대응해 AI 등 새로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노력이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전자 부품산업도 국가경제의 핵심인 반도체의 대중국 경쟁력 유지가 중요한 시점이며 선행 기업으로서의 고객 기반, 다양한 비즈니스 역량을 융합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AI 혁명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개될 것이며 우리 기업이 메모리 로직 AI 자동차 가전 공장기계 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강점을 활용하면서 미래기술, 사업 모델에 사전 대응할 수 있는 기술 제안 능력을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