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증시 고평가 논란, 소형주에 기회?
역대 최고 밸류에이션 속 대형주 쏠림 … 역사적 고평가 경고음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주요 지표들은 시장이 역사적 고평가 구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S&P500 지수는 매출 대비 주가비율(PSR)이 3.23배로 닷컴버블 정점보다 높아졌다. 기업들의 미래 이익을 반영한 주가수익비율(PER)도 22.5배에 이르며, 2000년 이후 평균치인 16.8배를 크게 웃돌고 있다.
특히 상위 10개 기업이 지수 전체 시가총액의 40%를 차지하는 쏠림 현상은 시장의 취약성을 키우고 있다. 이러한 집중 현상은 투자자들의 자금이 일부 대형주에만 몰리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는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
기술 대형주 쏠림과 위험
이 같은 고평가 논란의 중심에는 기술 대형주가 있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여전히 매출과 이익을 빠르게 늘리며 투자자들의 기대를 끌어모으고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매우 높은 가치평가와 과밀한 투자흐름이 시장을 장기 침체에 취약하게 만든다”는 점을 우려한다.
올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 발표 직후 발생한 급락은 그 취약성을 보여준 사례였다. 당시에도 대형기술주가 시장을 주도했지만 불확실성이 확대되자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며 급락세로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구조가 단순한 단기 변동이 아니라 거품 가능성을 내포한 장기적 위험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과거 닷컴버블 시기에도 기업들의 기술적 혁신은 명확했지만 그에 앞서간 과도한 기대와 밸류에이션이 결국 시장 붕괴로 이어졌다. 현재 상황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이는 만큼 경계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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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열 대표적 사례로 지목된 팔란티어
팔란티어(PLTR)는 과열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이코노미스트는 ‘팔란티어는 역대 가장 고평가된 기업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4300억달러로 지난해 순이익의 600배가 넘는다. 매출 대비 주가비율은 120배에 달해 구글이 상장 초기 기록한 22배와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높다. 애덤 파커 트라이버리엇리서치 창립자는 보고서에서 ‘팔란티어가 최고의 공매도 후보가 될 수 있다’며 기업가치 대비 매출 비율이 104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팔란티어의 주가 흐름은 극단적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8월 중순 이후 6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730억달러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이 과정에서 공매도 투자자들은 16억달러의 수익을 거뒀지만 올해 들어 누적 손실은 여전히 45억달러에 달한다. 즉, 공매도 세력조차 명확히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하락은 공매도 주도라기보다는 고평가된 주식들이 시장 전반의 조정 흐름 속에 더 큰 타격을 받은 결과”라고 해석한다.
투자자 심리는 불안정하다. 블룸버그는 향후 14거래일 동안 고용보고서, 소비자물가, 연준 금리 결정 등 주요 이벤트가 집중돼 있어 시장의 향방이 판가름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톰 리 펀드스트랫 대표는 “투자자들이 9월에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고평가와 계절적 약세가 겹치는 상황에서 시장의 불안정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일부 헤지펀드들은 변동성지수(VIX)를 대규모로 매도하며 안정에 베팅하고 있으나 이는 반대로 변동성이 급격히 확대될 경우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VIX가 지나치게 낮게 유지될 때 이후 급등이 나타난 사례는 여러차례 있었다. 2024년 여름 엔화 캐리트레이드 청산 사태, 2025년 초 관세정책 발표 직후의 급변 등이 대표적이다. 시장은 단기적으로는 평온을 보이지만 그만큼 충격에 취약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소형주, 금리인하 국면에서 빠른 성장세
이런 가운데 저평가된 소형주가 대안으로 부각된다. WSJ는 대형기술주가 지수를 왜곡하고 있지만 S&P500을 구성 기업별로 동일 가중하면 평균 밸류에이션은 1.76배로 역사적 평균과 큰 차이가 없다고 전했다. 즉, 지수상단을 차지하는 일부 종목이 과열됐을 뿐 상당수 기업은 여전히 합리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배로우 핸리 글로벌 인베스터스의 마크 지암브로네 대표는 “AI가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는 기업 중에서도 아직 고평가되지 않은 종목들이 있다”며 대형주 외 영역의 기회를 강조했다. 실제로 IWM, VTWO 등 러셀2000 지수 ETF는 대형주 지수 대비 부진했지만 최근 반등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형주는 금리인하 국면에서 대형주보다 빠른 성장세를 기록하는 경향이 있어 투자자들이 다시 주목하고 있다.
금리하향과 신용여건 개선 국면서 힘받아
달러 흐름과 무관하게 소형주를 움직이는 보다 직접적인 동력은 차입 비용의 완화와 신용여건 개선이다. 금리가 내려가거나, 국채와 회사채의 금리 차이(신용스프레드)가 좁혀지면 회사채·대출 금리가 낮아지면 상대적으로 부채 비중이 높은 소형주는 이자 부담이 줄어 이익 민감도가 크게 높아진다. 동시에 신용 위험 프리미엄이 축소되고 은행의 대출 심사 기준이 완화되면 만기 도래 채권의 차환(롤오버)과 설비·재고 투자 재개가 수월해져 이익 회복 속도가 붙는다.
최근 미국 투자등급 회사채 스프레드는 1998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좁혀졌고, 이에 맞춰 소형주 기업들의 정크본드(투자등급 이하) 금리와 스프레드도 동반 하락하고 있다. 옵션가산스프레드(OAS) 기준 미국 하이일드(고수익) 채권 스프레드는 최근 2.75까지 내려왔다.
또한 이익의 저변 확대도 핵심이다. 대형 기술주 몇 곳에 집중됐던 실적 기여도가 중·소형으로 퍼지기 시작하면 지수의 상단 종목 주도 장세가 완화되고 동일가중·중형·소형 지수의 상대 성과가 개선되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밸류에이션 격차 축소(평균 회귀)와 숏 커버링(공매도 청산) 유입이 맞물리면 상승 탄력이 커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산업 분포 측면에서 보면 소형주는 금융·산업재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단기금리 하락이 주도하는 수익률곡선 정상화(불 스티프닝)와 민간 설비투자·재고 사이클 회복에서 수혜를 받기 쉽다. 따라서 소형주의 반등은 단기금리 하락과 신용스프레드 축소가 동시에 나타나는 국면에서 힘을 받기 쉽다.
투자 전략의 균형 필요성
전문가들은 고평가된 대형주에만 의존하기보다 소형주와 같은 대안 자산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부 운용사들은 금리인하가 본격화될 경우 차입 비용에 민감한 소형주들이 더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경기민감도가 높은 소형주가 단기적 변동성은 크지만 금리환경이 완화될 때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투자자들은 소형주가 제공하는 분산 효과에도 주목하고 있다. 대형기술주가 지수 내 비중을 압도하는 현 구조에서는 특정 업종 충격이 곧 전체 지수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다양한 업종으로 구성된 소형주는 이러한 위험을 상대적으로 분산시킬 수 있다. 따라서 장기적 자산배분 전략에서 소형주 편입은 점점 더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부각되고 있다.
유명 투자자들도 소형주 강세 전망
요컨대 미국 증시는 역사적 고평가와 저평가가 공존하는 양극화 구조를 보이고 있다.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과제는 쏠림을 경계하고 과도한 기대가 반영된 종목 대신 합리적인 가치가 남아 있는 곳을 찾는 일이다. 시장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소형주는 단순한 대안이 아니라 새로운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어떤 자산에 비중을 두느냐가 향후 수익률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성장주·모멘텀 투자로 알려진 마크 미네르비니는 8월 22일과 8월 28일 X(옛 트위터)에서 연속적으로 상승장 지속과 소형주 강세를 시사했다. 8월 22일 글에서는 ‘최근 CCL과 UBER를 샀고, ABVX·STX·IBIT·OLLI·IWM을 보유 중이다… SPY가 신고가를 돌파하면 숏 헤지를 정리하고 매수를 늘리겠다’고 썼다.
8월 28일 글에서는 ‘시장은 상방 돌파를 앞둔 모습으로 보인다… 며칠 전 IWN을 샀고 여러 종목을 추가 매수했으며, 모든 포지션에 비교적 촘촘한 손절선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유명 투자자까지 소형주 비중 확대와 추세 상향을 거론하면서 나스닥 중심 장세에서 소형주로의 전환 기대는 한층 커지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