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 청문회, 연준 장악 시도 분수령
트럼프, 이사회 과반 확보 의지 … 금값 급등·채권 시장 흔들
월스트리트저널(WSJ) 3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8월 26일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우리는 매우 곧 과반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준 이사회(Board of Governors)는 총 7명으로 구성되며 대통령 지명과 상원 승인을 거친다.
이사회는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들과 함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참여해 금리를 결정한다. 과반을 확보할 경우 대통령은 통화정책과 금융규제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알파빌 블로그는 지난 8월 27일 트럼프 행정부가 이사회 장악을 넘어 지역 연은 총재 인사에도 개입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 연은 총재는 각 은행 이사진이 선출하지만, 5년마다 연준 이사회의 재승인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12개 지역 연은 총재 전원이 내년 2월 재승인 절차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으나, 트럼프가 과반을 확보할 경우 비우호적인 인사를 교체하고 우호적인 인사를 배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시카고 연은 총재 인준 과정에서 일부 트럼프 지명 이사들이 기권표를 던지며 절차가 정치화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미란의 겸직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됐다. 그는 연준 이사로 인준되더라도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직을 사임하지 않고 무급휴직 형태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잔여 임기가 4개월 반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지만, 지난 90여년간 행정부 고위직이 연준 이사를 겸직한 사례가 없었던 만큼 독립성 훼손 우려가 커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연준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협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금융시장 불안도 확대됐다. FT는 3일 기사에서 미국 30년물 국채금리가 7월 이후 처음으로 장중 5%를 돌파했다가 하락해 4.90%로 거래일을 마쳤다고 전했다.
재정적자 확대와 국채 발행 증가 우려에 연준 독립성 논란이 겹치면서 장기금리 변동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국채시장 불안은 미국을 넘어 영국, 일본 등 주요국으로 확산됐다.
금 시장의 반응은 더욱 뚜렷하다. FT는 4일자 기사에서 골드만삭스의 전망을 인용해 “연준 독립성이 손상되면 금 가격은 온스당 5000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올해 금값은 35% 상승해 3500달러를 넘어섰다. 중앙은행과 투자자들이 달러 자산에 대한 신뢰 약화를 우려하며 대체자산으로 금을 대거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리사 쿡 연준 이사를 둘러싼 사법 문제가 불거졌다. WSJ 4일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는 쿡 이사를 주택담보대출 사기 혐의로 형사 수사 중이며, 앤아버와 애틀랜타 소재 부동산 거래를 대상으로 대배심 소환장을 발부했다.
쿡은 소송을 제기해 “트럼프가 연준 독립성을 약화시키려 꾸며낸 것”이라고 반박했으나, 만약 해임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사회 과반을 확보할 수 있게 돼 장악 구도는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미란은 청문회에서 “내 의견과 결정은 거시경제 분석과 장기적 관리에 근거할 것”이라며 독립성을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과거 논문에서 대통령이 연준 이사를 쉽게 교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력과 트럼프 행정부와의 긴밀한 관계 때문에 시장의 시각은 여전히 냉담하다. 국채와 금 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물론, 달러 기축통화 체제의 신뢰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