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에너지무역기업 '비톨'의 사업비밀
현금동원력으로 경쟁사 압도
3년간 임직원에 28조원 환원
유럽 주요국 전체 소비를 웃도는 석유를 거래하면서도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비톨의 내부 구조와 보상 체계를 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조명했다.
런던 도심의 평범한 건물에 자리한 비톨은 최근 3년간 연평균 120억달러(약 16조6800억원) 순이익을 거두며 직원 1인당 약 600만달러(약 83억원)를 벌어들였다.
이 기간 임직원에게 돌아간 보상은 200억달러(약 27조8000억원)에 달한다. 코로나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시장이 요동치자 비톨은 경쟁사보다 발 빠르게 움직여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
1966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설립된 비톨은 현재 세계 최대 에너지 트레이딩 기업이다. 하루 거래 석유 물량은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 주요국 전체 소비를 웃돈다.
그러나 업계 밖에서 비톨의 존재를 아는 이는 드물다. 한 금융인은 “재무적으로 가장 건실하면서도 워낙 조용하게 움직여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쟁사들은 비톨을 업계의 ‘골드 스탠더드’로 평가하면서도, 일부는 시장 점유율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기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
비톨의 핵심은 파트너십 구조다. 어느 누구도 지분 5% 이상을 보유하지 못하게 돼 있으며 현재 약 600명이 파트너로 참여한다. 창업자 헹크 비에토르와 자크 데티허가 시작한 방식이다. CEO인 러셀 하디는 1993년 BP(British Petroleum)에 입사해 업계에 발을 들였고, 2017년부터 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는 거래와 운영에 집중하는 실무형 리더로 꼽힌다.
본사 직원은 1800명에 불과하지만 자회사와 합작사를 합치면 2만명에 이른다. 슬림한 조직 덕분에 직원들의 부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났다. 지난해에만 106억달러가 지분 환매 방식으로 직원들에게 돌아갔고, 파트너 1인당 평균 1750만달러(약 2432억원) 이상을 받았다. 경쟁사 트라피구라는 1만3000명 직원과 1400여 명 주주에게 20억달러를 배분하는 데 그쳤다.
비톨은 지난해 석유 2280억달러, 가스 690억달러, 전력 220억달러 규모를 거래했다. 2022년 매출은 5000억달러(약 695조원)에 육박해 월마트를 제외한 전 세계 모든 기업을 앞섰다.
전통적 무역금융 대신 중앙에서 조달한 자금으로 거래하는 구조 덕분에 은행 의존도가 낮고 공개 정보도 적다. 2021년 말 보유 현금과 단기예금만 93억달러에 달했다. 한 금융인은 “트레이딩의 비결은 현금 풀”이라며 “현금만 충분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막대한 이익을 일부 직원 보상과 재무 강화에 쓰는 동시에 공격적 투자에도 나섰다.
지중해 최대 정유소와 BP의 터키 소매 네트워크, 남아공 정유사 엔젠을 인수했고, 아프리카 유전·LNG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일각에서는 BP 일부 자산 인수설이 나오지만, 하디는 “50억달러 이상 거래는 무리”라고 선을 그었다.
비톨은 자회사와 합작사를 독립적으로 운영해 민첩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전직 트레이더가 에콰도르·멕시코 관리에게 뇌물을 건네다 미국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등 리스크도 있었다.
하디는 앞으로 연간 20억~90억달러 수준의 이익에 안착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예전보다 속도가 다소 느려졌을 뿐”이라며 “기회를 잡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