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쇼’ 2892건에 414억원 피해

2025-09-05 13:00:01 게재

거래 규모 큰 기업·대학 사칭으로 진화 … 낮은 검거율에 자영업자 전전긍긍

전국적으로 공공기관이나 기업을 사칭한 허위 전화주문(노쇼) 사기로 올들어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400억원이 넘지만 검거율은 1%가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에 주로 군부대 등 공공기관을 사칭하며 식당 등 소규모 자영업자를 노리던 수준에서 거래규모가 큰 대기업 대학 등을 사칭해 납품업체가 고가 제품을 대리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식으로 수법이 진화, 피해액도 늘어나고 있다.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박정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시도별 노쇼사기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1~7월 전국에서 2892건의 노쇼 사기가 발생했다.

이로 인한 소상공인·자영업자 피해액은 414억원에 달했다. 노쇼사기는 공공기관·기업 등을 사칭해 대량 주문을 하며 선결제·대리구매를 유도한 후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경기도가 577건(피해액 79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경북(284건, 38억원) 서울(281건, 33억원) 전북(216건, 35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전국적으로 2892건의 전화주문 사기가 발생했지만, 범인이 검거된 사건은 전체의 0.7% 수준인 22건(81명)에 불과했다. 세종, 서울, 부산, 울산, 경기북부, 경북, 제주 등지에선 단 1건의 사건도 해결되지 않았다.

박 의원은 “전화주문 사기는 유명한 공공기관과 기업의 이름을 빌려 소상공인을 현혹하게 만드는 악질 범죄”라며 “서민을 울리는 악질 범죄를 뿌리 뽑고, 0.7%에 머물러 있는 검거율을 높이기 위해 경찰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칭 대상 광범위, 수법도 대담해져 = 더욱이 노쇼 사기범들의 사칭 대상이 광범위해지고 수법도 점차 대담해지면서 경제적 피해가 늘어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지난 6월 광운대는 피아노 업체로부터 피아노·의자 등 구매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학교측이 확인한 결과 광운대 직원을 사칭한 사람이 업체를 속여 피아노를 구매하겠다고 주문한 것이었다. 이 사람은 피아노 업체에 의자 등을 대신해 구매해달라고 부탁했다. 피아노 업체는 광운대 직원이 맞다고 생각해 이를 공급받을 업체에 2000만원을 송금해 피해를 봤다.

광운대는 학교 홈페이지 등에 “최근 우리 대학 사업자등록증 사본, 구매확약서, 위조된 교직원 명함 등을 사용해 물품을 주문하고 관련 대금의 선입금을 요구하는 등 사기 및 물품 대금 편취 행위가 시도되고 있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유사 사례는 고려대, 한양대, 경희대, 충북대 등에서도 발생했다.

고려대도 학교 홈페이지에 안내를 통해 “최근 직원을 사칭해 대량의 물품 구매를 시도하는 등 피해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교직원을 사칭한 사기 등의 범죄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관업체 및 관계 기관의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수법은 사칭범이 업체에 대형 계약을 제안한 뒤 물품 일부를 허위 제3업체에서 대신 구매해달라고 요청한 후 피해자가 공범 관계인 제품 구매처에 돈을 보내면 빼돌려 종적을 감춘 광운대와 유사했다.

일종의 ‘2단계 사기’인 이런 수법은 대학이나 기업·공공기관은 물론 방송가·정당 등까지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다.

◆경호처 직원 ‘김민수’도 등장 = 방송인 전현무씨는 지난 7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우리 제작진이라고 하면서 식당에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돈을 안 받는다”고 밝혔다.

또 KBS 한 예능프로그램 제작진도 “제작진을 사칭해 일부 지역 식당에 단체 예약을 하고, 무단으로 노쇼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제작진은 어떠한 공식 예약 요청도 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려드린다. 이와 같은 사칭 및 허위 예약 행위에 대해 강력한 법적 대응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대통령실을 사칭한 노쇼 범죄도 등장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경호처 등을 사칭한 이른바 ‘김민수 노쇼사기’로 피해를 입은 용산구 일대 소상공인이 상당수다.

이 사건은 대통령 경호처 직원 ‘김민수’를 사칭한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이다. 김민수라는 직원은 경호처에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대통령실 인근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식당을 방문한다”며 대규모 예약을 하며 와인 등 물품을 대신 구매해 달라며 선결제를 요구하고 결국 나타나지 않는 피해 사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호처는 홈페이지를 통해 “경호처는 식당 예약 등 민간 활동에 기관명을 사용하지 않는다”며 “피해를 입은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유사 사례로 인한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경찰, 내년 1월까지 대대적 단속 = 장기불황으로 매출감소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들은 사기 피해를 입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한 온라인 카페에는 공무원, 연예인, 프로 스포츠 구단 등을 사칭하는 노쇼 사기 피해를 입었거나 당할 뻔 했다는 경험담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도 최근 입장문을 내고 “노쇼 사기는 기존의 단순 예약 부도와 달리 수백만원 상당의 피해를 내며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자영업자 줄폐업 속에 이들의 어려운 처지를 노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정이 이쯤되자 경찰도 일제 단속에 나선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9월부터 내년 1월까지 5개월 동안 보이스피싱, 메신저피싱, 스미싱, 로맨스스캠, 몸캠피싱 등 피싱 범죄를 단속한다. 특히 노쇼 사기도 신종 보이스 피싱으로 분류해 특별단속 대상에 포함했다.

경찰은 단속 과정에서 발견된 각종 범행 수단은 관계부처와 협업해 처리하고 범죄 수익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할 방침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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