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찌꺼기가 고양이 모래로, 감귤껍질이 가죽으로

2025-09-08 13:00:03 게재

환경부, 농업폐기물 새활용 기술에 규제특례

바이오가스 효율 상승 등 신 녹색생태계 조성

선인장잎이나 감귤찌꺼기 등이 동물 가죽을 대체할 수 있는 식물성 가죽 원단으로 재탄생, 자동차 내장재 가죽으로 사용될 수 있다면? 버섯 재배 과정에서 버려지던 폐배지를 활용해 스티로폼 완충재를 대체할 친환경 포장재를 만들 수 있다면?

그동안 각종 규제에 막혀 실현되지 못했던 기술들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환경부는 농업부산물과 동식물성 잔재물을 활용한 혁신기술 7건에 대해 ‘순환경제 규제특례(샌드박스)’를 부여했다고 8일 발표했다. △식물성잔재물(버섯폐배지 감귤껍질 커피찌꺼기 등)을 활용한 원료 및 제품 생산(6건) △동물성잔재물을 활용한 바이오가스 생산량 증대(1건) 등 7건이다. 이번 조치로 그동안 비료나 사료로만 제한적 활용이 가능했던 농업폐기물들이 화장품 포장재 가죽제품 등 고부가가치 제품 원료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순환경제 규제특례 제도는 한정된 기간이나 장소 규모에서 기업의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로 실증시험을 허용하고, 그 결과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면 관련 규제를 개선하거나 보완하는 제도다. 2024년 1월에 도입됐다.

기존 ‘폐기물관리법’은 농업부산물의 재활용 용도를 엄격히 제한한다. 폐기물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폐기물재활용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용된 재활용 용도 및 방법 외에는 재활용도 제한된다. 감귤껍질 버섯폐배지 커피찌꺼기 같은 식물성 잔재물은 비료나 사료, 연료 비누 활성탄 등 일부 제품 제조로 한정된다. 화장품 원료나 플라스틱 제품, 가죽 소재로는 사용이 금지되어 왔다.

쓰레기도 잘만 하면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사진은 커피찌꺼기를 활용해 만든 ‘덱(산책로 등에 까는 인공구조물)’을 다시 재활용하기 위해 모아 놓은 장면.

하지만 이번 규제특례로 7개 기업이 2년간 시험적으로 이런 제한을 넘어설 수 있게 됐다. 어스폼은 버섯재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배지를 원료로 균사체를 키우고 성형과 건조 공정을 거쳐 포장재 및 완충재를 제조한다. 연천청산버섯영농조합 내 배양실과 배지 생산 설비를 기반으로 스티로폼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생분해 포장재 생산 전 공정의 안전성과 환경성을 검증한다.

그린컨티뉴는 농부산물인 선인장 잎과 감귤박에서 가죽화 소재 성분인 셀룰로오스를 추출해 식물성 가죽 원단을 생산한다. 실증 첫해에는 선인장 잎과 감귤박으로 자동차 내장재의 가죽 요구기준을 충족하는 제품을 생산한다. 2년차에는 사과껍질 고구마줄기 녹차부산물 등으로 확대해 기능성 가죽을 개발할 계획이다.

알프래드는 커피찌꺼기 내 잔여 카페인을 제거해 균질화 작업을 거친 뒤 기저귀 등 위생용품 생산 시 발생하는 펄프 및 SAP(고흡수성 수지) 미세가루와 혼합해 고양이 배변용 모래를 생산한다. 기존 벤토나이트 모래 대비 응고력과 탈취성능이 강화된 친환경 제품이라는 게 업체 측의 설명이다.

라피끄는 식물부산물인 맥주찌꺼기 감귤찌꺼기 쌀겨 등을 새활용(버려지는 제품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해 엑소좀 등 화장품 원료를 생산한다. 이를 활용해 스킨케어 클렌저 등 다양한 화장품을 제조하고 품질을 실증할 계획이다. 어라운드블루는 왕겨 등 식물부산물을 재활용해 가교결합 셀룰로오스(CLC) 기반 플라스틱 소재를 개발해 컵 텀블러화분 등 친환경 바이오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할 방침이다.

루츠랩은 폐기되는 감귤찌꺼기 등을 활용해 △석세포 △페어셀 △페어셀 파우더 △천연 알부틴 등 고기능성 화장품 원료를 추출한다. 감귤부산물로는 비타민 B3 복합체 중 하나인 나이아신아마이드를 생산하며 제품 원료와 이를 활용한 화장품의 효능 품질 안전성을 종합 검증한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새로운 녹색산업 생태계가 조성될 전망이다. 한국바이오산업은 기존 가축분뇨 바이오가스 시설에 육가공공장에서 배출되는 돈내장 및 돈모 등 도축잔재물을 함께 투입해 바이오가스 생산량을 증대시키는 기술을 실증할 계획이다. 축분과 도축잔재물 혼합 원료 사용 시 바이오가스 생산량 증대 효과와 발효잔재물의 비료 적합성을 검증한다.

이들 기업들은 △실증사업비(최대 1억2000만원) 및 책임보험료(최대 2000만원) 지원 △1:1 컨설팅 및 관계 법률 검토 △우수기업 해외 진출 지원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환경부는 “2024년 순환경제 규제샌드박스 도입 이후 현재까지 △태양광폐패널 현장 재활용 △생분해플라스틱 바이오가스화 등 총 12건에 특례를 부여했다”며 “이중 다수 기업이 상용화에 성공해 새로운 녹색산업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내세웠다.

김고응 환경부 자원순환국장은 “재활용 기술의 현장 적용과 사업화를 위한 규제 특례의 역할이 매우 크다”며 “도전과 혁신의 장을 펼치는 산업계가 규제에 막히는 일이 없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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