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살롱

수면 질 높이기, 자기에 맞는 방법 따로 있다

2025-09-08 13:00:03 게재

열대야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에어컨 없이 잠들기 어려운 밤이 이어진다. 낮 동안 축적된 열은 건물 벽과 바닥에 머물며 밤에도 쉽게 식지 않는다. 선풍기를 켜고 창문을 열어도 무더운 공기가 밀려들어 결국 냉방기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잠자리에 들 수 있다.

하지만 시원한 바람 속에서도 깊이 잠들지 못하는 사람은 많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의문이 든다. 더우나 추우나 시끄럽거나 어수선해도 뒤통수만 베개에 닿으면 금세 잠에 빠져들었고 아침에 눈을 뜨면 개운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깨고 다시 잠들기가 어렵다. 이는 뇌의 각성 시스템이 나이에 따라 변하고, 스트레스나 건강문제로 수면구조가 단순하지 않게 바뀌기 때문이다.

왜 나이가 들수록 깼다 다시 잠들기 어려운지는 수면구조와 생체시계의 변화로 설명된다. 노화와 함께 서파수면이 줄고 N1 N2 같은 얕은 단계가 늘어 각성이 잦아진다. 이로 인해 한번 깬 뒤 깊은 단계로 재진입하는 복원력이 약해진다.

또한 시상하부 시교차핵의 동기화 능력이 떨어지고 멜라토닌 분비가 감소·조기화되어 수면시간이 앞당겨지고 새벽 각성이 늘어난다. 이 변화는 수면압력이라 불리는 항상성 구동도 약화시켜 밤사이 누적된 피로를 깊은 수면으로 해소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 여기에 야간뇨 통증 약물 수면무호흡 등 동반질환이 각성을 더 자주 유발한다.

중추신경계 각성이 깊은 잠 못들게 해

한의학에서는 노화과정에서 음양의 균형이 서서히 기울고, 특히 심신을 안정시키는 음혈이 줄어드는 반면 상부로는 허열이 쉽게 치솟는다고 설명한다. 이는 뇌와 심장이 불필요하게 자극을 받아 작은 자극에도 각성이 일어나는 상태와 비슷하다.

또한 기혈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간과 신장의 조절력이 약화되어 꿈이 많아지고, 잠이 들더라도 쉽게 깨어 깊은 수면단계로 내려가지 못한다. 전통적으로 ‘수면은 심과 신이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는 현대 생리학에서 말하는 ‘중추신경계의 각성 조절과 생체시계의 안정성’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문화적 차이도 수면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아이를 부모와 분리해 독립된 공간에서 재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동양에서는 가족이 함께 한 방에서 자는 문화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연구에 따르면 독립된 공간에서 잠든 아이들이 미세한 자극에 덜 깨어나고, 깊은 수면단계가 유지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다는 데이터가 있다. 반대로 가족과 함께 자는 아이들은 정서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지만 수면의 깊이는 다소 얕을 수 있다. 수면의 질과 정서적 유대는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와 같은 맥락은 부부의 잠자리에도 적용된다. 각방 혹은 각침대가 실제로 수면의 질을 높이는가라는 질문은 흔하다. 연구에서는 부부가 같은 침대를 쓰는 경우 수면 중 움직임이 서로에게 전해져 각성이 잦아질 수 있다고 한다. 반면 각방에서 잘 때는 깊은 수면 유지에는 유리하다. 그러나 수면의 질과 부부 관계의 돈독함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부부관계는 낮의 소통과 배려로 쌓이는 것이며, 밤의 물리적 거리가 반드시 정서적 거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무엇을 우선할지 부부가 스스로 선택할 문제다.

한의학에서는 머리는 차고 발은 따뜻해야 편안히 잠들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체온조절은 수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발이 차서 잠들기 어려운 사람은 따뜻한 족욕이나 얇은 양말 착용이 도움이 되고, 발이 화끈거려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은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거나 통풍이 잘 되는 이불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발이 뜨거워서’ 잠을 못 자는 현상은 체온조절 실패와 국소감각 자극이 겹친 결과다. 잠들기 직전 중심체온을 낮추기 위해 발로 열을 방출하는데 이 과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감신경이 항진되어 수면이 얕아진다. 발이 과도하게 뜨거우면 피부신경이 자극되어 화끈거림이 지속되고, 반대로 적절한 온족욕은 오히려 잠들기를 돕는다.

수면은 환경 문화 건강이 얽힌 종합물

궁극적으로 수면은 환경 문화 건강이 얽힌 종합적인 결과다. 열대야가 끝나면 계절은 서서히 선선해지지만 숙면의 어려움은 계절이 바뀐다고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잠이란 억지로 만들어내기보다는 조건을 잘 조율해야 얻을 수 있는 생리현상이다. 아이를 어떻게 재울지, 부부가 어떤 형태로 잘지, 개인의 체질에 맞는 수면 습관은 모두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맞는 길을 찾는 과정이다.

확실한 것은 건강한 수면이야말로 다음날 삶의 활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자원이라는 점이다.

조현주 포레스트요양병원 병원장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