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정책의 파도 위의 과학, 우주를 향한 긴 항해

2025-09-09 13:00:03 게재

1957년 구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을 때 미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우주로 위성을 보낼 수 있는 발사체를 보유했다는 건 곧 대륙간 탄도미사일도 쏠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뉴욕타임즈 1면 헤드라인은 ‘소련 위성이 미국 상공을 돌고 있다’였다.

그 충격은 곧바로 정책 변화를 불러왔다. 불과 몇달 뒤, 미국 의회는 새로운 우주 전담 기관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1958년 나사(NASA)가 창설된 것이다. 그때까지 흩어져 있던 연구소와 군사 기관의 일부를 통합해 우주개발이라는 거대한 목표 아래 묶었다. 같은 해 제정된 국방교육법은 수학과 과학 교육에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했고, 미국은 인재 양성과 연구 기반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한 국가의 위기의식이 과학기술 정책의 급격한 전환으로 이어진 순간이었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는 목표를 천명했다. 이 선언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국가적 자원을 총동원하는 결단이었다. 아폴로 계획은 수십만 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하나의 목표 아래 모였고,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다. 그 결과는 달 착륙이라는 역사적 성과에만 그치지 않았다. 반도체 컴퓨터 소재 통신 등 수많은 분야가 이 과정에서 성장했다. 정책이 방향을 정해주자 과학은 국가적 프로젝트로 자리 잡으며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지평을 열어젖혔다.

정책방향이 과학의 운명 좌우하는 시대

아폴로 계획은 정책적 결단이 과학의 지형을 바꾸는 대표적 사례다. 과학이 스스로의 열정만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정책이 장기적 안목과 자원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나라에서 이런 결실이 항상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정책이 바뀌면 몇 년을 공들인 분야가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정책이 등장하면 예상치 못한 곳에 거대한 자원이 쏟아지기도 한다. 연구자의 노력과 재능을 넘어 정책의 방향이 과학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다.

정부도 이러한 무게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정책의 정당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과학자들을 자문위원회에 불러들이고 각종 회의체를 운영하며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정책 과정에 반영하려 애쓴다. 그러나 현장의 눈으로 보면 그 과정이 충분히 작동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떤 경우에는 이미 정해진 결정을 정당화하는 절차에 머물고, 또 어떤 경우에는 과학자들 스스로도 정책 논의에 소극적으로 참여해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정부의 형식과 과학자의 주저함이 겹치며 긴 호흡의 연구는 설 자리를 잃는다.

우주개발은 이런 긴 호흡이 특히 필요한 분야다. 발사체 한 기를 개발하는 데에도 짧게는 10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리고, 위성 역시 기획 단계에서부터 발사와 운영까지 오랜 준비가 필요하다. 달·화성 탐사 같은 목표는 세대를 내다봐야 하고, 우주제조는 장기간의 투자와 실패를 거쳐야 성과를 낸다. 그러나 정책은 대개 몇 년 단위로 성과를 요구한다. 긴 호흡이 필요한 연구와 짧은 호흡의 정책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긴 호흡이 필요한 연구는 대개 단기간에 결실을 보기 어렵다. 정책이 성과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아폴로 계획이 보여주었듯 명확한 목표와 장기적 투자가 함께할 때 성과 요구는 오히려 연구를 전진시키는 힘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정책은 눈앞의 성과에만 매달리고 장기적 비전과 투자 없이 단기간의 결과만을 압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연구는 단기적 성과 위주로 기울고, 더 큰 미래를 준비할 여유를 잃게 된다. 과학정책은 경제적 효과만이 아니라, 사회가 어떤 미래를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지에 관한 선택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긴 호흡의 정책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과학자의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 현장을 아는 연구자가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할 때만 장기적 안목이 정책 속에 녹아들 수 있다. 단순히 “참석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자문이 아니라 정책의 기획 단계부터 연구자가 관여해 장기적 안목을 반영할 수 있는 구조, 그리고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성을 지킬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런 장치가 없다면 과학은 여전히 정책의 파도에 흔들리는 작은 배일 수밖에 없다.

정책 결정, 과학에 필요한 안목 담고 있나

우주정책은 본질적으로 세대를 건너뛰는 프로젝트다. 지금의 학생들이 연구자가 되고, 또 그 제자들이 연구자가 되어 이어받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정책 역시 그만큼의 긴 호흡을 품어야 한다. 우주를 바라보는 우리의 정책이 단기적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 세대가 꿈꾸고 도전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과학은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과학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우며 실험과 계산에 몰두하는 연구자들의 고군분투만이 아니라, 회의실의 정책 문서이기도 하다. 아폴로 계획이 보여주었듯 성과를 요구하는 정책도 긴 호흡과 함께라면 과학을 전진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정책 결정 과정은 과연 과학이 필요로 하는 그 긴 호흡과 깊은 안목을 담고 있는가.

전은지 카이스트 교수

항공우주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