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러 에너지기업 자금줄 열어줘
판다채권 발행 등 러시아 금융·에너지 지원 강화 … 미·EU 제재 추진과 대조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2단계 제재를 시행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이미 러시아산 석유를 대량 수입하는 인도에 기존 25% 상호관세에 25%를 추가해 총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2차 제재를 시행한 상태다. 이번 조치는 러시아산 제품을 구매하는 국가까지 겨냥한 ‘2차 관세’ 확대 가능성을 보여준다.
중국의 움직임은 러시아에 새로운 숨통을 트여줄 수 있다. 중국 금융 당국은 지난 8월 말 광저우에서 러시아 에너지 기업 경영진과 만나 이들의 판다본드 발행 계획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기업이 중국 본토에서 위안화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처음이다. 앞서 2017년 알루미늄 생산업체 루살이 15억위안 규모 판다본드를 발행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주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양국 관계가 ‘전례 없이 높은 수준’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러시아 국영 가즈프롬은 중국과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건설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로, 러시아의 대중 의존도를 한층 강화할 전망이다.
미국과 EU는 오히려 러시아의 ‘돈줄’을 조이려 한다. 8일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회의에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데이비드 오설리번 EU 제재 담당 특사가 추가 제재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베선트 장관은 NBC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유럽의 파트너들이 우리를 따르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EU가 러시아 석유를 사는 나라들에 2차 관세를 부과하면 러시아 경제는 완전히 붕괴할 것이고, 그것이 푸틴 대통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역시 미국 방송 인터뷰에서 “살인을 멈추는 방법은 푸틴의 무기를 빼앗는 것”이라며 “에너지가 그의 무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와의 모든 거래를 중단시켜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실질적인 압박에 나설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판다본드 시장 개방은 러시아에 큰 상징성을 지닌다. 가즈프롬은 최근 중국 신용평가사로부터 최고 등급인 AAA를 받았고, 원자력 기업 로사톰과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사 노바텍도 중국 내 신용등급을 확보했다. 이러한 평가가 러시아 기업들의 위안화 조달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EU도 자체 제재 패키지를 준비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EU는 러시아 은행과 에너지 기업 6곳가량을 추가 제재 명단에 올리고, 석유 무역과 결제망, 암호화폐 거래소까지 겨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번 패키지는 2022년 전면 침공 이후 19번째 조치로, 러시아산 원유 해상 수송망과 제3국을 통한 우회 거래까지 차단하는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제재 공조에 맞서 중국이 금융·에너지 분야에서 러시아와의 결속을 강화하면서, 국제 질서의 분열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이 추진하는 2차 제재가 실제로 중국을 정조준할 경우 미중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충돌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