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메이커’ 이 대통령, 특검 거부권엔 선 긋기

2025-09-09 13:00:30 게재

“대통령이 못 들어줄 요구해” … 협치 물꼬에 의미

특검 수사 확대 국면에서 ‘정치 복원’ 한계 여전

이재명 대통령이 주선한 8일 여야 당대표 회동은 악수도 하지 않던 여야 관계에 최소한의 협치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야는 특히 ‘민생경제협의체’ 구성에 합의하는 성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야당의 핵심 요청 사안인 특검 연장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대해 이 대통령이 화답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데다 특검의 수사 확대 국면, 여당의 개혁 밀어붙이기 행보가 맞물리며 정치복원까지 가는 길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인공지능(AI) 전략위원회 출범식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열린 국가인공지능(AI) 전략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이날 낮 12시 용산 대통령실에서 모처럼 얼굴을 맞댄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대표 취임 후 처음으로 악수를 교환하며 웃는 낯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회동에서 정 대표에게 ‘하모니메이커’라고 불리기도 한 이 대통령이 “손 잡으면 어떠냐”는 제안을 한 덕에 훈훈한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여야 대표가 악수를 한 것은 장 대표 취임 13일 만이자, 정 대표 취임 37일 만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찬 회동 전후로 여야 대표와 각각 단독 회담을 가지며 여야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오찬회동이 시작된 이후에도 야당에 대해 최선의 배려를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관례와 달리 야당 대표에게 먼저 모두발언을 할 것을 제안했고, 여당 대표 발언이 끝난 후 재차 장 대표에게 발언기회를 주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장 대표는 “다시 말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이런 게 협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이 대통령이 야당 대표로서 전임 대통령을 만났을 때에는 서로 간단한 인사말을 주고받다가 별다른 발언 기회 없이 비공개로 전환될 뻔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스스로 발언하겠다고 자청을 한 후에야 발언 기회를 얻었다.

3자 회동에서 서로에게 배려를 하면서 각각 소정의 성과를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 입장에선 기존에 강조해왔던 협치와 소통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며 통합 이미지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도 “대통령은 국민을 통합하는 게 가장 큰 책무”라고 강조하며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정 대표 입장에선 “악수는 사람하고 하는 것”이라며 ‘내란 정당’ 야당하고는 손도 맞잡지 않는 ‘독주’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야당 대표로서 품위를 지키면서도 야당으로서 할 수 있는 요구를 가감 없이 밝혔고 이 대통령과 단독회동을 하며 ‘체급’을 끌어올리는 부수효과도 얻었다.

각자의 정치적 성과는 있었지만 궁극적 목적인 ‘협치의 훈풍’이 지속가능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동을 통해 여야가 민생경제협의체 구성이라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기존에도 협의체 구성까지는 합의했어도 세부협의 과정에서 무산되는 경우는 흔했다. 공통공약에 대한 시행 등의 구체적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이번에도 빈손이라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가 핵심적으로 요청한 특검 연장 법안과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에 이 대통령이 화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도 정치복원으로 가는 길이 험난하리라는 전망에 힘을 보탠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9일 “여당이 추진하고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과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겠냐”면서 “장 대표도 어차피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야당으로서 할 말을 한다는 차원에서 이야기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하모니메이커’ 이 대통령이 물꼬를 튼 협치의 실효성은 결국 정치적으로 첨예한 사안보다는 여야 각자의 이해관계가 크게 갈리지 않는 민생 경제 등의 분야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회동에 대해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여·야·정이 함께 테이블에 앉아 얘기를 나눈 게 중요한 성과가 아닐까 싶다”며 “민생경제에 대해서도 서로 이견이 있다면 대화하며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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