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유상할당 확대 방안에 가격 정상화 기대

2025-09-09 13:00:35 게재

발전 부문 유상할당 비중 10%→50%로 늘려

배출권 가격 변동성 0.2%에서 10.4%로 커져

탄소누출업종에 또 공짜 배출권 … 논란 예상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확대 방안에 배출권 가격 정상화 기대가 커졌다. 시장에서는 배출권 가격변동성이 0.2%에서 10.4%로 커지는 등 즉각 반응을 보였다. 다만 철강·석유화학 등 탄소누출업종에 대해 ‘100% 무상 할당’을 유지하는 등 또 공짜 배출권을 준다는 점에 대해서는 실망하는 모습이다. 시민단체들은 즉각 반발에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국내 배출권 가격 한 달 만에 9.6% 상승 = 9일 한국거래소 배출권시장 정보플랫폼에 따르면 전일 2025년 할당배출권(KAU25) 가격은 9480원으로 한 달 전 8650보다 9.6% 상승했다. 지난달 1일부터 26일까지 일별 변동성은 0.2%였는데 27일부터 8일까지 변동성은 10.4%로 커졌다.

지난달 26일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영향이 크다. 이 의원은 탄소배출권의 과도한 무상할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①그동안 4.3%에 불과했던 유상할당 비율을 총 무상할당비율의 정의를 신설하고 4차 계획기간 총 무상할당 비율을 100분의 80이하로 정함을 명시하며 ②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기의 배출권 잉여분을 나눠주지 않고 정부가 예비분으로 보유하고 ③배출권가격이 급등락할 경우 시장에 공급되는 유상할당 배출권 물량을 조절하는 시장안정화 조치를 추가한 개정안을 내놨다.

박세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시장은 제한된 시장 참여자와 낮은 유동성, 이월 제한으로 인해 거래량이 연말에 집중되는 특성을 보인다”며 “이번 움직임은 내년부터 시행되는 유럽의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압력과 함께 이소영 의원의 ‘배출권거래제 정상화법’ 발의에 대한 정책 전환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 할당업체들이 미래 탄소비용 상승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장기적으로 국내 배출권 가격은 우상향이 예상된다. 11월부터는 기관투자자의 본격적인 배출권거래제 참여도 가능할 전망이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현재 낮은 배출권 가격의 주요 원인으로 과도한 무상할당이 지적되고 있는 만큼 4차 계획기간 무상할당 비율 축소는 배출권 가격 상승 요인”이라며 “또 내년부터는 자산운용사, 은행, 보험사, 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본격적인 배출권거래제 진입이 예상되고 향후 선물거래 도입, 상장지수증권(ETN), 상장지수펀드(ETF) 등 개인이 투자할 수 있는 배출권 관련 금융상품 출시도 예정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배출권 가격 목표치 6만원 = 이날 환경부가 기후특위에 보고한 배출권거래제 4차 계획기간(2026~2030년) 배출권 할당 계획과 관련 내용에 따르면 배출권 가격 목표치는 6만원으로 설정했으며, 발전(전기·에너지 생산) 부문 유상할당 비율을 현재 10%에서 2029년 50%로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는 오는 12일 공청회를 통해 이의 내용을 발표하고 업계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유상 할당 비율은 업체가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배출권의 비율을 말한다. 그간 기업이 무상으로 받는 배출권이 너무 많아 시장경제 원리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배출권거래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기후환경단체 등이 요구하는 ‘발전 부문 100% 유상 할당’에 대해 환경부는 “4차 계획기간 이후 시행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유상 할당 비율이 높아지면 전기요금이 뛸 가능성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탄소누출업종에 대해 ‘100% 무상 할당’도 유지하기로 했다. 철강·비철금속,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업종 대다수가 탄소누출업종에 포함돼 있어 논란이 있을 전망이다. 발전 부문은 유상할당 비중을 2026년 20%에서 2030년 50%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하고 발전 외 부문도 내년부터 유상할당 비중을 15%로 높이는 것과 비교할 때 여전히 미흡한 조치라는 지적이다.

현재 유럽연합(EU)과 미국, 영국, 뉴질랜드 등 중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가가 발전 부문에 대해선 배출권을 100% 유상으로 할당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과 정면으로 배치” = 한편 시민사회는 9일 철강·석유화학 등 국내 온실가스 배출 1·2위 업종에 대한 전량 무상할당 방침을 비판하며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전면 개편을 촉구하고 나섰다.

시민사회 연대체인 녹색철강시민행동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이번 계획이 정부의 국정과제인 ‘기후위기 대응과 산업 르네상스’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난 10년간 배출권거래제가 사실상 기업에 너무 많은 ‘공짜 배출권’을 제공하면서 오히려 잉여 배출권이 쌓이는 구조였다”며 “실제로 2015~2023년 철강·석유화학·시멘트 업종별 상위 5개 기업이 확보한 잉여배출권만 4060만톤CO₂e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쌓인 배출권 일부는 다음 계획기간으로 이월해 사용할 수 있어, 제4차 계획기간으로 넘어갈 잉여배출권은 총 약 1억4000만톤CO₂e에 이른다. 이는 2025년 한 해 사전할당량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로, 제도의 실효성을 크게 떨어트린다는 지적이다.

녹색철강시민행동은 “정부가 탄소누출업종을 유상할당의 예외로 남겨두고 잉여배출권을 방치한다면, 배출권 가격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산업의 저탄소 전환도 늦어질 것”이라며 “전 업종의 유상할당을 확대해 탄소 가격 신호를 되살리고, 경매 수익을 기후대응 기금으로 전환해 저탄소 기술 지원에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제4차 할당계획 수립 과정에서 지역 주민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산업계 의견만 반영됐다는 절차적 정당성 논란도 제기됐다. 정부가 오는 12일 열리는 공청회 이전에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과정 공유와 의견 청취 절차를 생략한 채 계획안을 마련했고, 공청회 이후에는 15일까지 불과 4일간의 의견 수렴 기간만 두어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김정진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 수단인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은 지역 주민을 넘어 전 국민의 미래와 직결된 사안”이라며 “이처럼 중요한 계획을 두고도 충분한 사전 설명과 시민 의견 수렴 절차 없이 공청회 뒤 단 4일간의 의견 접수로 마무리한 것은 환경부가 기업의 입장만 중시한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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