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웨스팅하우스 로열티 논란과 테슬라의 교훈

2025-09-11 13:00:00 게재

원자력발전은 단순한 에너지 공급 수단이 아니다. 한 나라의 기술력과 외교력이 교차하는 종합 산업이다. 최근 체코 원전 수출 과정에서 불거진 웨스팅하우스(WEC)와의 로열티 논란은 그래서 더 뜨겁다. 무려 50년 간, 이미 기술적 실효성이 희미해진 부분에 대해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실적주의에 치우친 지난 정부의 협상 결과라는 지적은 피할 길이 없다.

19세기 말 에디슨과 테슬라 사이에서 벌어진 유명한 ‘전류전쟁’이 있었다. 에디슨은 직류(DC)를 고집하며 전류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소위 지저분한 ‘개싸움’을 벌였다. 반면 테슬라는 교류(AC)의 우위를 확신하며 WEC를 통해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자금난에 몰린 WEC가 테슬라에게 특허권 무상 양도를 요구했고 테슬라는 묵묵히 응했다. 그 결과 WEC는 테슬라의 교류 기술을 발판으로 승승장구했지만, 정작 그 성과의 원천이었던 테슬라는 역사 속에서 잊혔다.

이 일화는 술이 가득 차면 스스로 새어나가 더 이상 채울 수 없도록 하는 ‘계영배(戒盈杯)’를 떠올리게 한다. 테슬라의 희생으로 세계를 호령했던 WEC는 결국 오만과 부실경영 끝에 여기저기에 팔려다니는 신세로 전락했고 이제는 사실상 ‘특허 괴물’로 연명하고 있다.

‘1970년대 기술’에 로열티 황당한 일

1970년대 한국은 원전을 처음 도입하면서 WEC의 기술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은 그 기술을 토대로 독자적 역량을 쌓아올렸고, 마침내 한국형 경수로를 개발했다. 오늘날 체코에 수출된 원전은 사실상 한국 기술의 성과물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1970년대 기술’을 근거로 수십년 간 로열티를 바친다는 것은 아무 근거 없는 황당한 일이다.

그렇다면 재협상의 길은 없는가. 국제계약의 틀에는 분명한 기회가 있다. 첫째, 하드십(Hardship) 원칙이다. 국제상사계약원칙(UNIDROIT)은 예측 불가능한 사정변경으로 당사자 간 형평이 무너질 경우 재협상 요청을 허용한다. 50년 전 기술에 근거한 과도한 로열티는 전형적인 사정변경이다. 둘째, ICC Hardship 모델클로즈는 이행의 곤란이 발생했을 때 중재판정부가 계약을 수정·종결할 권한을 인정한다. 이 역시 협상의 돌파구다.

셋째, 미국 법원의 판단도 참고할 만하다. WEC는 한국형 원전 수출에 미국 규정(Part 810)을 적용하려 했지만, 연방법원은 민간이 이를 직접 집행할 권한이 없다고 보았다. WEC가 주장하던 법적 제재 수단은 힘을 잃었고, 한국은 재협상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넷째, 소유구조의 변화다. 현재 WEC는 더 이상 미국회사가 아닌 캐나다 펀드가 소유한 회사다. 정치·외교적 부담보다 상업적 거래 논리로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이쯤에서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고사가 떠오른다. 단기적 외교 성과와 실적을 위해 무리한 계약을 맺는다면 오히려 국가의 장기적 이익을 해칠 수 있다. 재협상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다. 한국 원전의 자존심, 나아가 국가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계약 과정의 불합리성을 국제적으로 제기하고, 기술적 기여와 권리 구조를 철저히 검증하며, 합리적 조정안을 제시해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것이다. 테슬라가 대의를 위해 자신의 혁신을 내주었지만 그 과실만 챙겼던 WEC, 지금 한국의 뼈아픈 교훈이다. 그러나 한국은 테슬라가 아니다. 우리는 세계 원전 시장에서 독자 기술로 우뚝 선 강국이다. 따라서 과거의 족쇄를 끊어내고, 법과 상업의 언어로 냉정하고 집요하게 협상해야 한다.

국제협상의 출발점은 국익우선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실무자에게 “정상회담을 못해도 좋으니 불공정한 협상에서 무리하게 서명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그 말처럼 모든 국제협상의 출발점은 국익우선이다. 국익이 없는 정상회담은 이벤트에 불과하고, 국익 없는 계약은 족쇄일 뿐이다.

에너지는 곧 국가의 힘이다. 불필요한 로열티 낭비는 미래를 갉아먹는다. 1970년대 기술에 2070년까지 로열티를 바친다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과거에 저당 잡히는 일이다.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협상의 지혜와 기술의 자존심을 함께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 원자력의 미래가 흔들림 없는 토대 위에 설 수 있다.

윤경용 페루 산마틴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