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킬 수 있는 분위기 아니다”…금감원 업무 중단 위기

2025-09-11 13:00:00 게재

조직개편에 직원들 반발 커져,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총파업 분위기 확산 … “금소원 분리, 공공기관 지정 철회”

감독·검사 차질 우려 … 영국은 감독기능 통합 계획 발표

“지금 직원들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금융회사에 현장 확인을 위해 직원들을 보내야 하는데, 지금 시점에서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금융감독원 직원들이 정부 조직개편안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국장들이 업무지시를 내리기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11일 오전 금감원 직원 700여명은 전일에 이어 출근 전 집회를 이어갔다. 7일 정부가 조직개편안을 발표한 이후 9일부터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 1층 로비에서 검은 옷을 입고 집회를 시작했다. 일부 국장급 인사들도 집회에 참석하고 있으며, 검은 옷을 입지 않은 국장들은 직원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만큼 분위기가 심각하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전 직원이 같은 날 연차를 사용해서 출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총파업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 노동조합은 10일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구성했다. 윤대완 노조 부위원장이 위원장을 맡았다. 정보섭 금감원 노조위원장 직무대행(수석 부위원장)은 “비대위에서 향후 대응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며 “아직 총파업 여부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논의 사항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주에는 파업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금융감독원 로비에 세워진 근조기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감원 로비에서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고,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분리하는 정부조직 개편안 규탄 집회가 열렸다. 사진은 이날 금감원 로비에 설치된 금감원 동기회가 세워둔 근조기. 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직원들 대규모 이탈 가능성 = 정부는 현재 금융위원회를 해체해서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를 신설하고, 금감위 산하에 금감원을 두기로 했다.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 조직을 떼어내서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신설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금감원과 금소원은 공공기관으로 지정된다.

금감원 직원들은 금소원 분리가 오히려 소비자보호에 역행하고, 공공기관 지정은 금융감독의 독립성을 침해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금감원이 분리되면 감독기구의 중복, 금융회사들의 부담 증가 등 비효율이 초래되고 조직 신설에 따른 불필요한 행정 비용 등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업무 중복과 책임 회피 현상, 조직 간 불협화음과 갈등 발생 등 소비자보호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감원에서 금소원이 분리될 경우 직원들의 전문성이 약화되고 계속 민원·분쟁 업무만 담당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금감원 노조는 “금융회사 및 시장에 대한 전문성을 보유한 직원들이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 업무를 수행하고, 이러한 경험은 추후 권역별 감독·검사부서 복귀 후 소비자보호를 위한 제도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금소처가 분리될 경우 금소처 직원들의 시장 및 상품에 대한 이해 부족, 전문성 저하 등으로 소비자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공기관 지정과 함께 지방 이전 소문이 돌면서 직원들의 불안감은 더 커졌다. 공공기관 지정으로 인한 처우 악화와 기관 자체가 지방으로 내려갈 경우 변호사와 회계사 등 전문 인력과 젊은 직원들의 대규모 이탈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복현 전 원장 책임론 불거져 = 직원들은 금감원이 이번 정부 조직개편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았고 윤석열 정부에서 이복현 당시 금감원장의 무리한 권한 행사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7일 조직개편안 발표 당시 이창규 행정안전부 조직국장은 “지금까지 금감원이 하는 역할에 비해 외부의 민주적인 통제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공공기관 지정이 되면 경영, 재정 등 여러 부분에 평가를 받아 민주적 통제가 확실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8일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직원 간담회에서 “강력한 권한을 가진 금감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분노는 이 전 원장 당시 금감원 조직을 이끌어온 임원과 국장 등 간부들에 대한 책임론으로 옮아가고 있다. 이재명 정부에서 임명된 이찬진 금감원장도 이번 조직개편안에 대해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기는 했지만 직접 만나 소통을 하지 않으면서 실망감을 키우고 있다. 비대위가 구성되고 난 이후 이 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만날 예정이어서 어떤 입장을 밝힐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2013년 분리했던 지급결제감독청 통합 = 2012년 금융감독기구 분리를 시행한 영국에서는 최근 중복 규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나왔고, 일부 감독 기능을 통합하는 계획이 발표됐다. 영국은 영업행위를 감독하는 금융행위감독청(FCA)과 건전성을 감독하는 건전성감독청(PRA)으로 구성된 ‘쌍봉형 금융감독시스템’을 시행했다. 영국 상원 금융서비스 규제위원회는 지난 6월 보고서를 내고 “각각의 감독기관들이 요구하는 중복적이며 심지어는 모순되기까지 한 요건들이 금융사의 영업을 어렵게 하고 심지어는 핵심적 제도개선도 지연시켰다”고 지적했다.

영국은 2013년 금융서비스법 개정을 통해 FCA 산하에 지급결제감독청(PSR)을 신설했다. 일부 기업의 과점적 시장지위를 이용한 가격담합 등 부작용 우려가 지속 제기되면서 지급결제시스템 시장 내 공정경쟁 촉진 및 서비스 혁신 제고의 일환으로 전문 감독기구 설립을 결정했다. 운영예산은 금융회사의 감독분담금으로 충당하고, 본점을 FCA와 같은 건물에 두어 FCA와 협업 유지하도록 했다.

영국은 이달 8일 지급결제규제의 간소화를 위해 FCA와 PSR 간 감독 기능을 통합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금융서비스개혁법상 PSR의 조사·제재 권한을 이전하고, FCA 규정과 중복 문제를 개선해 일관된 집행 체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통합에 따른 규제 간소화로 의사결정의 일관성이 확보되고 지급결제시장의 경쟁과 혁신을 촉진해 금융시장의 디지털화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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