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이민 단속 여파로 배터리 공장 지연
블룸버그 "쇠사슬 충격적"
비자제도 개선 논의 본격화
미국 조지아주에서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공동으로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이 미 이민 당국의 대규모 단속 이후 심각한 인력 부족 사태로 공사가 사실상 전면 중단됐다고 1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현지 상황을 독점 보도했다.
현대차의 호세 무뇨스 최고경영자는 이날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주 단속 이후 여러 달에 걸쳐 일정이 늦춰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이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면 그 자리를 어떻게 채울지 봐야 한다”면서 “그 인력 대부분은 미국 내에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토로했다.
이번 단속은 지난 9월 4일 실시됐다. 연방 요원들이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부지에서 주로 한국인 근로자 약 475명을 구금했다. 당시 구금자들은 손목·허리·발목이 쇠사슬에 결박된 채로 있었고, 이 충격적인 장면이 산업 전반에 파장을 일으키며 한미 외교 관계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밝혔다.
무뇨스 CEO는 새 공장 건설이 지연되는 동안 조지아주 커머스에 있는 SK온 공장 등에서 배터리를 계속 조달하겠다고 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성명을 통해 “미국 내 프로젝트에 전념하고 있으며, 필요한 투자와 비즈니스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으로 송환되는 근로자들을 위한 전세기는 이날 미국을 출발해 12일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번 단속으로 인해 미국 내 한국 기업들의 수십억 달러대 미래 투자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 관련 미국 내 여러 사업장에서 건설이 차질을 빚고 있으며, 일부 한국인 직원들은 유사한 단속 우려로 파견 근무를 꺼리고 있다.
현대차는 이미 2028년까지 미국 내 투자를 총 260억달러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3월 약속한 210억달러에서 50억달러 늘어난 액수로, 미국 내 자동차 생산 확대(90억달러)와 루이지애나 강철 공장 건설 등 기타 사업(120억달러)이 포함돼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11일 자동차 업계 행사에서 “이번 사건이 무척 우려스럽다. 다행히도 무사히 귀국하게 돼 다행”이라며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가 긴밀히 협력 중이며 비자 제도는 매우 복잡하다. 함께 더 나은 제도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단속 시점은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 강화를 위해 만난 직후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공장 건설에 필요한 외국 기술 인력에 대해 단기 비자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CNBC 인터뷰에서 “큰 사업을 이곳에 지을 때 필요한 기술자들에게 적절한 단기 워크비자를 제공하고, 미국인을 교육한 뒤 고국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뇨스 CEO는 “매우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우리 회사에 있어서 미국 시장의 전략적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 최근 수년간 많은 투자를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태지역 안보 의장은 “외교적 해결책이 성사됐다는 사실은 모든 문제를 피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공장주들에게 비자 법규를 앞으로 엄격히 집행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이번 한국인 구금 사태를 촉발한 비자 문제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조만간 미국 내 공장 구축 활동을 위한 단기 파견자 등 비자 사각지대를 메우는 논의에 본격 착수할 예정이다.
한국인의 미국 내 작업·취업 등을 위한 비자 확대 문제는 해묵은 이슈로 지금까지 진전이 없었으나, 이번 구금사태를 계기로 논의에 새로운 동력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비자 신설이나 쿼터 등은 미 의회 결정 사안인 만큼 양국 정부 간 논의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