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살롱

방문진료는 왜 막아놓는 거지?

2025-09-15 13:00:00 게재

80세 김아무개씨 아들이 의원에 찾아왔다. 아버지는 평소 고혈압이 있어 정기방문해 진료를 봤던 분이다. 최근 앓으면서 식사도 못한다고 했다. 영양제라도 맞히고 싶다고 아들이 말했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나라는 방문진료(왕진)제도가 없어 가서 진찰할 수도 영양제를 맞힐 수도 없다”고 말했다. 난감해하는 얼굴을 보고 안타까워 진료 끝나고 저녁에 한번 들르겠다고 안심을 시켰다. 실제 여러번 겪은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럴 때 왕진가방을 들고 방문해서 진료를 할 수 있을까? 결론은 ‘절대 안된다’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방문진료시범사업에서 승인을 받은 극히 일부 의사들만 할 수 있다. 의료기관 외 장소에서 승인을 받지 못한 의사가 진료는 하더라도 비용을 청구할 수도 없어 무료봉사를 해야 한다.

필자는 간단히 진료가방을 챙겨 방문을 했다. 평소 장애인건강주치의로서 여러차례 필요한 곳에 방문을 했기 때문에 준비가 돼 있었다. 어르신을 보고 말을 걸어도 대답도 없고 옅은 숨만 쉬고 있었다.

아들과 가족들은 노환이니 곧 돌아가실 것처럼 생각하고 장례니 뭐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열은 없고 청진기를 대보니 거친 수포음이 들렸다. 평소 청진을 했던 터라 그 전에는 안 들리던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대게 수포음이 들이면 폐렴을 의미한다. 어르신들은 그럴 때 열도 안 나고, 기력이 없어 기침도 잘하지 못한다. 필자는 열도 재보고 여기저기 살펴본 후 “폐렴이니 응급실로 모시라”고 설명했다.

가족들은 집에서 임종을 맞는 게 좋은데 괜한 일을 벌이는 것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필자를 쳐다봤다. 고민 끝에 아들은 간단히 짐을 챙겨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며칠 후 전화를 걸어보니 입원하셨고 지금 기력도 회복하고 식사도 조금씩 하신다고 했다. 한참 지나서는 건강한 모습으로 어르신이 직접 진료실을 찾아와 혈압 진료를 받으셨다.

시범사업도 마비나 중증질환 환자만 허용

우리나라는 언젠가부터 왕진으로 불렸던 방문진료 제도가 없어졌다. 얼마 전부터 정부는 국민들의 요구가 높아지니 ‘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을 시행하기는 했다. 하지만 일정 기간 신청을 받고는 더 이상 신청을 안 받다보니 의사들이 필요하다고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진입장벽을 낮추고 기본교육만 이수하게 해서는 지역의 의사들이 방문진료를 할 수 있게 해도 되지만 막고 있다. 창구가 닫혀있다는 뜻이다.

누가 방문진료를 하는지 관리가 안 돼서? 많이 참여하면 예산이 부족해질까봐? 진료의 질이 낮아질까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대한민국이고, 누워 지내는 장애인이나 환자들이 꽤 많은 상황에서 의사들이 안 가겠다면 모르겠지만 가겠다고 하는 의사들도 발이 묶여 있다.

게다가 시범사업의 대상자도 뇌졸중 등으로 인한 마비환자나 중증질환 중심이다. 위의 사례와 같은 급성기질환으로 신속한 진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제외다. 방문진료를 필요로 하는 수요자들의 요구를 망각하는 일이다.

1998년 개봉한 일본영화 ‘간장선생’에서 주인공이면서 의사인 아카기씨는 진료실을 벗어날 때는 하루종일 발로 뛰며 집들을 방문한다. 거동이 힘든 환자들을 진찰하고는 가족에게 병원에 와서 약을 받아가라고 한다. 2009년 개봉한 일본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에서 이노 의사는 방문진료를 하고 때로는 임종을 앞둔 어르신을 찾아가 안아주며 가족들을 위로한다.

방문을 쉽게 하는 유럽이나 일본의 모습을 보면 부럽다. 물론 영화 속의 의사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최소한 문턱을 낮추고 원활하게 방문진료를 할 수 있게 정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방문진료 시범사업도 그 이름을 지우고 본 사업으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 공약에도 방문진료를 중심으로 한 재택의료가 중요하게 들어있다.

국민 만족도 최고 높일 수 있는 제도인데

이번 제주도에서 시작하는 제주형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에서부터 지역의 의료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라도 방문진료 활성화를 꾀했으면 한다. 의사의 방문과 더불어 간호사들의 방문간호도 쉽게 풀려야 한다. 간호조무사들도 미약하지만 방문간호에서 일정 정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동네의원에는 대부분의 간호 인력들이 간호조무사들이기 때문이다.

방문의료라는 것이 어렵고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의료진의 여력이 있고, 국가 재정만 조금 들인다면 쉽게 할 수 있으면서 국민들의 만족도를 최고로 높일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조속한 시행을 촉구하는 바다.

고병수 탑동365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