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전략광물 앞세워 존재감 커진 고려아연

2025-09-15 17:24:04 게재

탈중국 시대, 공급망 구축 최우선 과제

MBK 적대적 M&A 변수 될까

지난해 9월 영풍과 MBK가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를 감행한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양측의 공방이 지속하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고려아연이 최근 불안정한 국제정세 속에서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미중 갈등과 관세전쟁, 미국 트럼프 대통령 시대는 정치와 경제, 동맹과 우방의 모든 가치를 흔들며, 새로운 질서에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신냉전 수준의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서 경쟁 우위를 지키기 위한 미국의 ‘탈중국’ 공급망 구축은 최우선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아연의 경제 안보적 중요성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아연과 연, 금은동 등 주요 산업 소재를 넘어 안티모니와 인듐, 비스무스 등 전략광물(희소금속) 분야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면서 중국의 전략광물 및 희토류 수출규제와 맞물려 이른바 대안 기업으로서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등 서방 세계에서도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문제는 사모펀드 MBK가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를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전문가들은 MBK에 의한 M&A가 이뤄질 경우, 지금까지 여러 기업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이 반복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국내외 공급망의 심각한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고려아연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 1위 방위산업체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망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를 위해 고려아연은 울산 온산제련소에 약 1,400억원을 투자해 고순도 게르마늄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게르마늄은 적외선(열상) 카메라, 야간투시경 등에 쓰이는 금속으로 F-35 전투기 전자광학 표적획득시스템(EOTS), FGM-148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등 록히드마틴의 주요 무기체계에도 폭넓게 활용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세계 게르마늄 생산량의 상당 부분이 중국에 편중됐는데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올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의 게르마늄 금속 수입량 가운데 51%가 중국산으로 집계됐다.

중국은 2023년 8월부터 게르마늄과 갈륨에 대한 수출허가제를 시행하면서 핵심광물에 대한 수출통제를 본격화했고 지난해 12월에는 게르마늄 대미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탈중국 공급망 구축 필요성이 커진 가운데 고려아연과 록히드마틴의 협력은 핵심광물 수급 안정성을 끌어올리는 전략적 결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고려아연은 게르마늄 공장을 상업운전하는 2028년부터 연간 10톤 규모의 고순도 게르마늄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는 2024년 미국의 게르마늄 수입량 추정치 33톤의 약 30%에 해당하는 물량으로 알려졌다.

방위산업 핵심소재로 쓰이는 안티모니 공급망에서도 고려아연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평가다. 지난해 9월 중국이 안티모니 수출 통제에 나서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혼란을 겪었고 자연스레 국내에서 유일하게 안티모니를 생산하는 고려아연이 주목을 받았다. 고려아연은 올 6월 미국행 화물선에 안티모니 20톤을 선적하며 대미 수출의 신호탄을 쐈다. 올해 100톤, 내년에는 240톤 이상의 안티모니를 미국으로 수출하는 목표를 세운 만큼 미국의 탈중국 공급망 형성에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뿐만 아니라 고려아연은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인듐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해 왔다. 연간 150톤가량 인듐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전 세계 인듐 생산량의 11%를 차지한다. 특히 USGS에 따르면 2020년 이래 2023년까지 인듐 대미 수출국 1위가 한국이다. 미국 인듐 수입량의 약 29%가 한국산으로 집계됐는데 사실상 고려아연이 미국의 인듐 공급망 일익을 담당하는 셈이다.

고려아연이 국가핵심기술을 비롯해 각종 핵심들을 상당수 보유한 기업이라는 점도 기술유출 우려를 키운다.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국가핵심기술은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적, 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관련 산업의 성장잠재력이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에 국가 안전보장 및 국민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을 뜻한다.

지난해 11월 산업통상자원부는 고려아연의 하이니켈 전구체 가공 특허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했다. 이후 올 5월 정부는 고려아연의 고순도 아연 제련 기술인 헤마타이트 공법(황산아연 용액 중 적철석 제조 기술) 또한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키로 했다.

나아가 격막전해기술을 활용한 안티모니 메탈 제조 기술까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M&A 등의 방식으로 외국 기업에 매각될 경우 반드시 산업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다양한 법기술을 활용해 법망을 피해나가는 방식 역시 고도화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실제로 중국을 비롯해 해외 자본의 우회 침투와 이로 인한 기술유출 등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 가장 경계하는 위험 요소로 이를 막기 위한 각종 법제도 장치가 강화되고 있다. 반면 국내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 때문에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을 겨냥해 추진 중인 적대적 M&A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단순한 경영권 분쟁을 넘어 경제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이 상당하다. 국내 유일의 전략광물 공급망으로 이른바 대체재가 없고, 한미 양국의 경제안보 협력에도 역할론이 커지면서 분쟁으로 인한 기업가치 훼손을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과 학계, 재계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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