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부담에 해고 나선 미국 기업들
제조·에너지 업종, 비용 늘자 감원 확대 … “정책 불확실해 고용·성장 불가능”
오하이오주 애크런에 있는 일렉트릭 기타 페달 제조업체 어스퀘이커 디바이스(EarthQuaker Devices)의 줄리 로빈스 최고경영자(CEO)는 “이 관세는 내 회사 같은 미국 제조업체들에게 짐일 뿐이다. 아무런 이익이 없다. 고용과 성장을 가로막는 갑작스러운 세금”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요를 맞추려면 3~4명을 추가로 고용했어야 했지만 현재는 사실상 채용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로빈스 CEO는 “정책의 안정성과 비용의 예측 가능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고용이나 성장은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는 불확실한 환경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말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8월 미국 고용보고서에 따르면 신규 일자리는 2만2000개 증가에 그쳤다. 제조업에서는 1만2000개 일자리가 줄어들어 올해 들어 총 7만8000개가 사라졌다. 광업·에너지 부문에서도 6000개가 줄었고 도매업 고용은 올해 3만2000개 감소했다.
농기계 제조업체 존디어(John Deere)는 올해 관세 비용으로 3억달러가 들었으며 이 규모가 연말까지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일리노이와 아이오와 공장에서 238명의 직원을 해고했고, 3분기(5~7월) 순이익은 전년 대비 26% 감소했다.
노동시장의 악화는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인하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달 “고용 둔화가 트럼프 관세의 인플레이션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루즈벨트연구소의 마이클 매도위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제조업은 노동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수요 둔화와 급격한 정책 전환의 피해자”라면서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석유·가스 산업은 관세로 인한 철강과 장비 비용 상승에다 유가 하락이 겹치며 큰 압박을 받고 있다. 미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올해 들어 4000명이 산업을 떠났으며, 이는 팬데믹 이후 가장 빠른 속도다. 셰브론은 8000명, 코노코필립스는 3250명 감원을 발표했다.
텍사스의 유전업자 엘리엇 도일은 “지금 상황은 꽤 무섭다. 은행들에 따르면 내년 전망은 훨씬 더 나빠질 것”이라며 업계가 경기침체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가 미국 내 투자를 촉진하고 장기적으로 고용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는 “존디어 같은 사례와 달리 우리에게 관세가 사업에 도움이 되고 있다. ‘우리는 설비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하는 기업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은 정책 불확실성을 이유로 신규 고용을 미루고 있다. 와이오밍머신(Wyoming Machine)의 트레이시 타파니 CEO는 “관세가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상황이 오락가락한다. 이 불확실성이 사업하기를 매우 어렵게 만든다”며 자발적 퇴사자의 자리를 채우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제조업체 경영진은 관세가 장기적으로 산업 재건에 도움이 될 것이란 견해를 여전히 유지했다. 패션 제조업체 뉴욕 엠브로이더리 스튜디오(New York Embroidery Studio)의 창립자 미셸 파인버그는 300명 직원 중 일부 감원을 계획하면서도 자동화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너무 오래 전부터 물건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결정했고, 그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시장의 불안정이 장기화될 경우 경기 둔화 우려가 더욱 확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연준이 이번 주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