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트럼프 규제완화에 투자자 권리 후퇴 논란

2025-09-17 13:00:14 게재

트럼프, 분기보고 폐지 주장 SEC도 친경영진 행보 가속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트럼프 대통령이 연이어 내놓은 조치가 투자자 권리 약화를 불러온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SEC는 최근 엑슨모빌이 도입을 추진한 ‘소액주주 자동투표제’를 허용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상장기업의 분기 실적보고 의무를 없애고 반기 보고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기업 경영진의 권한만 강화하고 투자자들의 감시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SEC는 엑슨모빌의 제안을 승인하며, 내년 주주총회부터 소액주주가 별도 신청하지 않는 이상 이사회 입장에 따라 자동으로 찬성표가 행사되도록 허용했다. 엑슨모빌은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중요한 진전”이라고 주장했지만, 비판 여론은 거세다. 네덜란드의 행동주의 투자자 단체 ‘팔로우 디스(Follow This)’의 마르크 반 바알 창립자는 “분명한 목표는 변화를 요구하는 주주의 표를 억누르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엑슨모빌은 2021년 헤지펀드 엔진넘버원에 의해 이사회 3석을 내준 뼈아픈 경험을 한 뒤 기후변화 대응 요구를 차단하기 위해 방어책을 강화해왔다. 지난해에도 행동주의 펀드 ‘아루나 캐피털’과 ‘팔로우 디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런 전력 속에 SEC가 친경영진적 장치를 허용한 것은 규제기관의 태도 변화를 드러낸다는 평가가 나온다. 델라웨어대 로런스 커닝엄 교수는 “이 같은 움직임은 대형 지수운용사나 의결권 자문사의 영향력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에 더해 기업 공시 의무 완화까지 추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SNS ‘트루스 소셜’에 글을 올려 “기업들은 분기마다 보고를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 반기마다 보고하면 비용이 절감되고 경영진이 회사 운영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회사를 운영하는데, 우리는 분기마다만 본다. 좋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학계와 투자자 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의 아스와스 다모다란 교수는 “분기보고와 장기 경영은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며 “중국 기업들은 오히려 단기 뉴스게임의 달인”이라고 비판했다.

CFA협회의 재무보고정책 책임자인 샌디 피터스는 투자자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투자자들은 보고 빈도를 줄이는 것에 2대1 비율로 반대한다. 비용이 들더라도 정보 접근성을 더 중시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분기보고에는 감사 전 재무실적뿐 아니라 소송, 규제 조사 등 중대한 법적 사안이 공시돼 투자자에게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FT는 최근 SEC가 주주제안 요건 완화, 분쟁의 강제중재 허용 검토 등 규제완화 로드맵을 연달아 내놓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개리 겐슬러 전 SEC 의장 보좌관 출신 아만다 피셔는 “수십 년간 쌓아온 주주 권리가 규제 공격에 노출돼 있다”며 “행정부와 SEC가 기업 경영진 보호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콜럼비아대 법학전문대학원 존 커피 교수도 “미국이 자본조달 비용이 낮은 것은 높은 투명성과 주주의 권리 보호 덕분이었다”며 이번 조치들이 자본시장의 매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일부 기업 자문사들은 “소규모 기업의 보고 부담을 줄여 장기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규제완화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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