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길로 간 민통선에서 분단의 현실과 마주하다

2025-09-17 13:00:18 게재

평화곤돌라 타고 ‘캠프 그리브스’ 가보니

정전협정문 사본, 학도병 편지 등 전시

갤러리 그리브스 전시관. 과거 미군부대가 운영했던 볼링장을 전시관으로 리모델링했다. 곽태영 기자

“파주임진각평화곤돌라는 세계 최초로 민간인출입통제구역(민통선) 구간을 운행하는 곤돌라입니다.”

지난 11일 오후 2시 경기도 파주 임진각 주차장에서 탄 곤돌라가 출발하자 안내방송이 나왔다. 가을 햇살과 함께 곤돌라 안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투명한 바닥 아래로 도도히 흘러가는 임진강 물살이 보인다. 옆으로는 통일대교와 자유의 다리, 일부 교각만 남은 독개다리가 보였다. 5분쯤 지나 북쪽 탑승장에 도착했다. 이 곤돌라는 임진각 주차장에서 임진강을 건너 캠프그리브스까지 왕복 1.7㎞를 오간다.

곤돌라가 생기기 전에는 임진강 건너편 민통선(군내면) 지역은 군사 경계가 삼엄한 통일대교를 통해서만 갈 수 있었다. 도라산 전망대와 제3땅굴 관광을 위해 방문해도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하지만 곤돌라가 놓이면서 사전 예약이나 복잡한 신분확인 절차 없이 민통선을 하늘길로 다닐 수 있게 됐다. 지난 2020년 4월 개통된 평화곤돌라 이용객은 현재 240만명이 넘는다.

◆금단의 땅 ‘민통선’ 하늘길로 240만명 다녀가 = 곤돌라 북쪽 탑승장에서 오른쪽으로 100m쯤 올라가니 ‘캠프그리브스’가 나왔다. DMZ 남방한계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2㎞)에 위치한 캠프그리브스는 1953년부터 2004년까지 미군이 주둔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미군기지다. 지난 2004년 부대가 철수한 후 2013년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가 역사·예술·문화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미군시설을 원형 보존한 체험형 숙박시설 DMZ체험관(유스호스텔)과 카페그리브스(옛 차량정비소), 갤러리그리브스(옛 볼링장), 다큐멘타관(옛 군사 교육실), 스튜디오BEQ(옛 독신 하사관 숙소), 탄약고 창작예술 프로젝트 등을 운영 중이다.

갤러리그리브스에선 ‘세개의 선, 1953년 정전협정’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된 ‘정전협정문’ 사본(영문판)과 정전협정서 제2권(지도) 실물과 동일하게 제작된 지도를 만져볼 수 있다. 지도에 표시된 ‘3개의 선’은 군사분계선, 남방한계선, 북방한계선을 말한다. 정전협정문과 제2권 지도는 국문·영문·중문 3개 국어로 작성됐으며 원본은 미군(UN군) 북한, 중국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류지연 공사 DMZ운영팀 주임은 “정전협정문을 보면 김일성(북한) 펑더화이(중국) 마크 웨인 클라크(UN군) 세명이 서명했는데 각기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한 학도병, 해외 파병 용사 등에 관한 이야기도 전시돼 있다.

이어 중립국감독위원회(NNSC) 국가들이 제공한 전쟁 당시 북한군과 주민들의 사진, 탄약고 2개 동에 전시된 설치 작품(김명범 작 ‘원’)과 미디어아트(이승근 작 ‘이선을 넘지 마시오’) 작품을 감상했다. 원형 그대로인 캠프그리브스 각종 시설과 그 안에 전시된 작품들은 세계 유일의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줬다.

◆“케데헌 영향, DMZ 외국인관광객 300만 넘을 듯”= 곤돌라를 타고 남쪽 탑승장으로 돌아와 임진각으로 향했다. 임진각은 1972년 남북공동성명 발표 후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을 위해 세워졌다. 임진각 앞 망배단엔 설과 추석 명절마다 실향민들이 찾아와 고향을 기린다. 지난 2004년부터 경기관광공사가 매입해 관리해오다 건물 노후화로 지난해 대수선에 들어갔다. 기존 건물의 뻐대만 남기고 모든 구조물을 철거하고 다시 짓다시피했다. 반세기만에 다시 태어난 임진각은 연간 600만명의 내·외국인이 찾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건물 내부엔 북한체험전시관, 북쪽을 볼 수 있는 디지털망원경, 전망대 및 포토스팟, 카페·편의점·음식점 등 편의시설이 들어섰다. 최영진 경기관광공사 홍보마케팅팀 차장은 “망원경으로 일부지만 북한 송악산 등 북한 땅을 볼 수 있는 카페가 있는 곳은 경기도에 임진각과 애기봉 두곳뿐”이라며 “대수선 후 편의점을 유치하지 못해 공사 직영체제로 운영 중인데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자영 공사 시설관리팀장은 “임진각 국민관광지는 규모가 14만5000평으로 남이섬(14만평)보다 넓고 DMZ관련 관광콘텐츠도 많다”며 “관광객이 연간 270만명 정도 임진각 일대를 찾는데 올해는 대북관계 개선, ‘케이팝 데몬헌터스’ 영향 등으로 300만명 이상 방문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DMZ 관광은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봐야 할 5곳에 꼭 들어간다”며 “제3땅굴 체험을 가장 선호하는데 임진각 주변에 집결해 버스를 타고 다녀오기 때문에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임진각도 필수코스”라고 소개했다.

임진각 주변에는 DMZ의 생태·역사·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다.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등록문화제 제78호),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철교 형태를 재현해 임진강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독개다리’, 1953년 전쟁포로 교환을 위해 가설한 ‘자유의 다리’, 6.25전쟁 납북자 기념관, 실제 군사시설 지하벙커를 전시관으로 꾸민 ‘BEAT131’, 평화누리와 캠핑장, 바람개비 언덕 등이 대표적이다. 경기관광공사는 주말 반나절 코스로 이들 시설을 해설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DMZ 도슨트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DMZ는 그냥 지나치면 사소할 수 있지만 그 가치와 역사를 알면 훨씬 크고 의미있게 다가온다”며 “누구나 쉽고 편하게 DMZ를 접할 수 있고 전 일정에 해설사가 함께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조원용 경기관광공사 사장은 “임진각 평화누리 일대가 과거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누구나 쉽게 방문해 평화, 통일,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되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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