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대만 소비쿠폰 지급과 군공교(軍公敎) 임금 사이의 정치학

2025-09-18 13:00:04 게재

대만에서도 보편 지급을 실시한다.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1만 대만 달러(43만원 가량)를 현금이나 계좌이체 방식으로 나눠주는 일종의 재난지원금 보편적 현금지원 정책이다. 국회를 장악한 국민당과 민중당의 강한 요구와 다수 여론의 지지가 맞물려 라이칭더 정부는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대가로 군·공무원·교육공무원(軍公敎, 군공교)의 임금인상은 보류되었다. 단순한 예산조정처럼 보이지만 이번 선택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 간 정치적 주도권과 지지 기반의 균열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군공교 임금인상은 공직자 처우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공립 교원의 임금이 오르면 사립학교 교원 급여도 연동되는 구조 덕분에 교육계 전반으로 파급된다. 이는 국가 안보·행정·교육 전반의 핵심인력 집단의 사기와 안정에 직결된다. 전통적으로 국민당 기반이던 군공교 집단은 차이잉원정부 8년간 세 차례 임금인상과 강경한 대중노선 속에서 민진당 지지가 확대되었다. 실제로 2024년 총통 선거에서 라이칭더 후보는 군공교 계층에서 1위를 기록하며 국민당의 전통적 지반을 흔들었다.

정치역학상 의회와 행정원의 선택 갈려

보편지급은 모든 국민이 혜택을 받는다는 점에서 여론 호응이 크지만 장기적 효과는 제한적이다. 2009년 마잉주(馬英九)정부의 소비권은 1인당 3600대만달러(15만5000원)가 지급되었고 2020년 삼배권은 1000대만달러를 내면 3000대만달러를 받는 구조였다. 이어 2021년 오배권은 당초 자부담을 요구했으나 여론 반발로 전 국민에게 5000대만달러를 무료 지급했다.

이들 소비쿠폰은 전국민 지급이었기에 형평성 문제는 없었지만 행정비용이 크고 실질적 경기 부양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 2023년 6000대만달러 현금지급은 자부담 없는 직접 지급으로 행정효율은 높았으나 상당 부분이 저축으로 돌아가 GDP 성장률 기여는 약 0.3% 수준에 머물렀다. 이번 2025년 1만대만달러 지급도 비슷한 한계를 가질 수 있다.

정치현실은 냉정했다. 국민당과 민중당이 국회 다수를 활용해 보편지급 법안을 강행했고 국민 다수도 “모두가 혜택을 보는 방식”을 지지했다. 반면 군공교 임금인상은 행정원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었으나 재정건전성 부담 때문에 실행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보편지급은 입법부, 임금인상은 행정원의 권한이라는 제도적 한계 속에서 여당은 주도권을 야당에 내주는 결과를 맞이했다. 결국 보편지급은 국회 다수의 주도로 입법이 이뤄졌고 행정원은 이를 집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과실은 국민당과 민중당이 챙기며 ‘민생의 대변자’로 각인되었다.

반면 임금인상 보류는 민진당이 어렵게 넓힌 군공교 지지 기반을 흔드는 결과를 낳았다. 민진당은 정책을 시행하고도 과실은 얻지 못하고 내부불만까지 떠안는 이중부담에 직면한 것이다. 이러한 역학은 내년 지방선거에 직결된다. 야당은 보편지급을 자신들의 성과로 내세우며 중도층 표심을 흡수하려 할 것이다. 민진당은 군공교 집단의 불만까지 감수해야 한다. 특히 군공교 집단은 단순한 직종이 아니라 국가운영의 핵심축이기에 이들의 이탈은 지방선거뿐 아니라 정권 안정성에도 치명적이다.

더 나아가 이번 사안은 사회적 불평등 논쟁으로도 이어진다. 보편지급은 모두가 같은 금액을 받기 때문에 형식상 평등해 보이지만 분배효과는 제한적이다. 반면 군공교 임금인상은 국가 기능 유지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특정집단만을 대상으로 한다. 정책 선택의 본질은 단순한 경기부양 효과를 넘어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지방선거 국면에서 민생·복지·불평등을 둘러싼 담론을 더욱 뜨겁게 만들 것이다.

정치적 대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드러날 듯

또한 이번 경험은 향후 대만 정치에 제도적 교훈을 남긴다. 국회 다수당이 입법을 통해 보편지급을 주도하고 행정원이 재정건전성 문제로 임금인상을 포기한 사례는 권력분립구조 속에서 정책 우선순위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재정 여건이 제약될수록 입법부와 행정부 간 정책균형은 더욱 첨예해지고 이는 정당 간 책임공방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방선거 이후에도 이 문제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보편지급과 임금인상 중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대만 정치의 장기적 난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현금은 풀렸고 임금은 멈췄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예산 조정이 아니라 국회와 행정원의 힘겨루기 속에서 정당 간 정책 주도권 경쟁과 지지 기반 재편을 가속화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내년 지방선거는 그 정치적 대가가 어떻게 표심으로 드러나는지를 확인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하범식 대만 국립가오슝대 교수 동아시아어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