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술주 AI 기대감에 4년 만에 최고치
자국산 칩 육성 본격화
설비투자 두 배 확대
중국 기술주가 인공지능 투자 기대감에 힘입어 승승장구하고 있다. 홍콩 상장 주요 기업들을 담은 항셍테크지수는 16일 한때 3.9% 급등하며 2021년 11월 이후 무려 4년 만에 최고치에 올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상승세를 주도한 것은 중국 빅테크 바이두로, 하루 만에 주가가 19%나 치솟았다. 알리바바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 SMIC(중국국제반도체), 전자상거래 업체 징둥닷컴도 나란히 강세를 보였다. 지수는 이번 주로 7주 연속 상승 마감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미중 긴장 완화와 기술기업들의 AI 투자 확대가 맞물리면서 항셍테크지수는 올해만 41%나 뛰어올랐다.
같은 날 저녁 중국 국영방송 CCTV는 리창 총리가 칭하이성 산장위안 데이터센터를 둘러보며 국산 AI 칩 도입 현황을 점검했다고 보도했다. 공급업체로는 알리바바 반도체 자회사 티헤드를 비롯해 비렌테크놀로지, 메타엑스, 중하오신잉 등이 거론됐다. 시장은 이를 정부가 자국 칩 생태계 육성에 본격 나서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해 매수로 몰렸다.
앞서 11일 로이터는 알리바바와 바이두가 AI 모델 훈련에 자사 칩을 본격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알리바바는 소규모 모델에 자사 칩을 투입했고, 바이두는 쿤룬 P800 칩으로 언니(Ernie) AI 모델 훈련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밸류에이션도 한몫하고 있다. 항셍테크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0.5배로 최근 5년 평균인 23.3배는 물론 미국 나스닥100지수의 27배보다도 낮다. 증권사들의 평가 상향도 이어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알리바바의 클라우드 사업 전망을 근거로 목표주가를 올렸고, JP모간은 중국 배터리업체 CATL의 투자의견을 조정했고, 애리트리서치는 바이두를 매수 등급으로 격상했다.
악재 해소도 주가 상승을 뒷받침했다. 징둥닷컴 유창동 회장이 호텔 사업에서 출혈 경쟁을 피하겠다고 선언하자 주가가 6%대 상승세를 보였고, 메이투안과 트립닷컴도 함께 올랐다.
자금조달 움직임도 활발하다. 알리바바는 최근 32억달러 규모 전환사채를 발행했고, 텐센트는 4년 만에 90억 위안 딤섬본드를 발행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SMIC(중국국제반도체)가 국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시험 가동 소식에 6%대 상승을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 통화 예정과 틱톡 운영 합의 소식이 전해지며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고, 이는 투자심리에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징둥닷컴 등 인터넷 대형주들의 설비투자 규모가 2023년 130억 달러에서 2025년 320억달러로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투자 확대와 정책 지원이 맞물린다면 규제 강화와 경기 둔화로 빠져나갔던 해외 자금이 다시 중국 시장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항셍테크지수는 올해 상승률만 놓고 보면 아시아 주요 지수들을 크게 앞서며 기술주 중심의 투자 심리 회복을 이끌고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