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펜타닐 단속의 역설…코카인 재부상
멕시코 마약왕 '멘초'
미국에서 시장 확장
멕시코 시에라마드레 산맥 깊은 곳에 은신한 59세 네메시오 오세게라는 ‘멘초’로 불리며 미국에서 다시 불붙은 코카인 수요와 트럼프 행정부의 펜타닐 전쟁을 발판으로 새로운 마약왕으로 부상했다. 그가 이끄는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은 분열로 흔들린 시날로아 조직을 밀어내며 멕시코 최대 범죄 세력으로 자리잡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5일(현지시간) 분석했다.
시날로아는 펜타닐 제조·밀매로 악명을 떨쳤으나, 미국 정부의 정조준 단속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반면 할리스코는 콜롬비아와 에콰도르를 거쳐 태평양 연안으로 운반된 코카인을 대량으로 들여와 북미 시장에 공급하며 세력을 키웠다. 2019년 이후 미국 서부 지역 코카인 사용은 154% 증가했고, 동부도 19% 늘었다. 가격은 5년 전보다 절반 가까이 떨어졌고, 순도 높은 제품이 넘쳐나고 있다.
가난한 농가 출신 오세게라는 이제 현상금 1500만달러가 걸린 인물이 됐다. RPG 로켓포로 무장한 특수 경호대가 그의 거처를 지키고, 방문객들은 눈을 가린 채 지뢰밭을 통과해야 한다. 그의 카르텔은 지하터널과 잠수정을 활용해 코카인과 메스암페타민을 미국으로 들여보내고 있다.
시날로아 조직 내부 권력 다툼은 오세게라에게 결정적 기회였다. 지난해 양측은 무기와 현금을 교환하고 국경 터널을 공유하기로 했다. 시날로아 조직은 펜타닐에 집중하고, 할리스코 조직은 코카인과 메스암페타민을 맡는 방식이었다. 멕시코 검찰은 이를 “범죄 세력 균형을 뒤흔든 전례 없는 사건”이라 규정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 단속은 마약 차단 인력을 이민자 처리로 돌리며 국경 검문소를 비워놨다. 이로 인해 콜롬비아산 코카인이 미국에 대량 유입됐고, 가격은 빠르게 떨어졌다.
할리스코는 마약 외에도 멕시코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 토르티야와 닭고기, 담배, 맥주에 세금을 매기고, 도로·학교 건설을 맡아 지방정부 구실을 한다. 정유소와 송유관에서 빼낸 연료를 암거래해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리조트 분양 사기 콜센터를 운영하며 노인들을 속여 수익을 올린다.
그의 조직은 간부 통화를 주기적으로 검열하고 휴대폰을 교체하는 철저한 보안 체계를 유지한다. 2020년에는 멕시코시티 보안청장을 겨냥해 400발을 퍼부은 총격 사건도 벌였다. 이 사건은 그의 군사력과 대담함을 보여줬다.
한편 퀘스트 다이어그노스틱스가 2일 발표한 2025년 약물 테스트 지수는 미국 직장인들의 무작위 검사에서 펜타닐 양성률이 고용 전 검사보다 7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전체 약물 양성률은 4.6%에서 4.4%로 소폭 하락했지만, 펜타닐 사용은 오히려 증가하며 중독성과 사고 위험을 키우고 있다. 특히 펜타닐 양성자의 60%가 다른 약물에도 동시에 양성을 보였고, 마리화나나 암페타민과의 병용 사례도 늘어 직장 내 안전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시날로아 잔존 세력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멘초의 부상은 곧 새로운 불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