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차기구축함 사업자 선정 또 연기
민간위원·업체 이견 더 논의하자며 여당서 제동
천문학적 규모 세계 전투함 시장에서 악재 우려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선도함을 건조할 업체 선정이 또 다시 보류됐다. 일부 민간위원들과 갈등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업체들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자 국회가 사업 진행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사업 연기가 반복되면서 국가 안보 공백은 물론 각국에서 천문학적 규모로 잇달아 발주되는 전투함 사업 수주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KDDX사업은 2030년까지 약 7조8000억원을 투입해 6000톤급 최신형 이지스함 6척을 확보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방위사업청(방사청)은 18일 사업기획관리분과위원회(분과위)에 KDDX사업을 상정하지 않았다. 당초 방사청은 분과위를 거쳐 30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1번함) 건조’ 안건을 상정, 사업방식을 결정할 계획이었다.
업계에서는 일부 민간위원들 사이에서 방사청과 각 업체가 논의했던 상생협력 방안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더불어민주당에서 더 논의하자며 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초 방사청은 이날 분과위에 수의계약으로 한다는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었다. 다만 HD현대중공업이 수의계약을 하고 상세설계 과정에 한화오션이 참여하는 절충안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분과위에서 지적됐던 국회 보고와 기술 진보화 등을 마무리짓고 민간위원들에게 수의계약에 대한 타당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사청은 지난 3월 17일과 4월 24일에도 분과위를 열고 KDDX 사업방식을 수의계약으로 결정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일부 민간위원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반대로 연기했다.
KDDX사업추진방안은 수의계약, 경쟁입찰, 공동개발 등이 거론된다.
KDDX사업이 수의계약으로 확정되면 사실상 HD현대중공업이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맡게 된다. 통상 함정사업은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순으로 이어진다.
방사청 개청 이래 19차례 함정설계에서 충무공이순신함을 제외하곤 모두 기본설계를 한 업체가 상세설계를 맡았다. KDDX사업은 2012년 개념설계를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 2023년 기본설계를 HD현대중공업이 수행했다.
하지만 한화오션은 자신들의 KDDX 개념설계도를 현대중공업 직원이 불법 촬영해 유죄 판결을 받은 점을 들어 경쟁입찰을 요구한다. 불법 촬영에 연류된 HD현대중공업 직원은 2022년 11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KDDX사업은 1년 9개월 이상 지연되고 있다. 방사청은 당초 지난해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방사청은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올해초부터 HD현대중공업과의 수의계약 방식으로 상세설계를 진행하되, 한화오션이 일부 설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상생협력 방안을 마련해 두 기업을 설득해왔다. 각사 실무진이 수차례 방사청에서 만나 회의를 하기도 했다.
양사는 방사청의 중재에 큰 틀에서는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양사가 해석하는 공동설계의 기준점에 차이가 커 앞으로 논의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개입으로 사업 진행이 연기되자 업계에선 국가 안보는 물론 해양방산 수출에 악영햘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군이 원하는 시기에 인도되지 못하면 해군력 증강 차질은 물론 이지스 체계를 갖춘 고부가가치 전투함을 수출하는 시점도 늦춰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헐뜯기 논쟁만 반복하는 국가에서 생산하는 군함을 어느 나라에서 구매하겠다고 나서겠냐”고 지적했다.
한편, KDDX사업 관련 당정 협의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번 안건 상정이 불발되며 KDDX사업 논의는 빨라도 국정감사 이후인 10월 말쯤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