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 연준의 임무 재정의한 베센트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장관이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을 통해 연방준비제도(Fed)의 임무를 확대하자는 주장을 내놓아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베센트는 현재 연준의 통화정책 문제를 몇가지 짚었다.
첫째, 연준은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을 거치며 단순한 금리 조정의 범위를 넘어 대규모 자산 매입(QE, 양적완화)이라는 비상도구를 동원했는데 시간이 흐르며 QE는 기대 이상의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고 경제 전반에 돌발적이고 왜곡된 결과를 남겼다는 것이다. ‘그림자 금리 모델’로 환산하면 2014년 기준 금리가 –3% 수준까지 내려간 것과 같았지만, 미국경제의 성장률은 그만큼의 반등을 보여주지 못했다. 연준의 성장률 전망은 매번 실제치보다 높았고, 2010~2011년에는 2년간 누적 7.6%포인트의 과대 예측을 기록했다. 이는 달러 기준 약 1조달러에 해당하는 경제 규모 차이다.
연준에 ‘장기금리 완화’ 책무 부여 시도, 통화정책 독립성 흔들어
둘째, 자산시장 왜곡 문제다. 국제결제은행(BIS) 연구는 QE가 주가상승에는 확실한 자극제가 되었지만, 실물경제 효과는 제한적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정책 혜택은 자산을 가진 계층에 집중되었고 이른바 ‘부의 효과’라는 포장은 붙었지만, 사실상 부유층에만 강력한 완화책이었고 반면 중산층 이하 계층은 상대적 박탈감만 커졌다는 것이다. 연준이 내세운 ‘경제 안정화’ 구호와 달리, 현실은 불평등 심화와 사회적 균열 가속이었다고 비판했다.
셋째, 연준 권력의 팽창이다. 2008년 9000억달러에 불과하던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2020년대 초 9조달러에 육박했다. 국채뿐 아니라 주택저당증권(MBS)까지 사들이며 사실상 특정 산업 지원에 개입했다. 이는 본래 재정정책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자,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해야 할 중앙은행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토마스 회니그 전 캔자스시티 연은 총재가 “부자에게 돈을 이전하고 투기를 조장했다”고 직격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넷째, 구조적 이해충돌이다. 연준은 은행감독과 대출 기능, 정책수립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로 인해 금융 규율을 유지해야 할 감독 기능은 희석되고, 감독 실패가 곧바로 정책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이 나타났다. 결국 시장의 자율적 규율이 아닌 연준의 손길이 모든 균형을 대신하는 상황이 정착된 셈이다. 이 때문에 감독 기능을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베센트는 최종적으로 오늘날 연준은 막대한 자산을 떠안고 연간 1000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으며 독립성과 신뢰도는 흔들리고, 내부적으로는 특정 정치 성향이 늘면서 비당파성에도 금이 가고 있고 과거 “최대 고용과 물가 안정”이라는 본연의 임무는 희미해지고, 경제 전반에 직접 개입하는 ‘거대 기관’으로 변모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은 베센트가 “연준은 ‘최대고용’과 ‘물가안정’ 그리고 ‘완만한 장기 금리 유지’라는 법정 책무에만 집중하는 독립기관으로서의 신뢰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고 연준의 임무를 확대 재정의한 대목이다. 겉으로는 연준이 위기 대응 도구를 남용하지 말라는 메시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장기금리를 인위적으로 억제해 정부의 차입 비용을 줄이라는 압박으로 읽힌다.
미국은 팬데믹 이후 누적된 재정 지출과 트럼프행정부의 감세정책 여파로 국가부채가 사상 최고치에 이르렀다. 이자 비용만도 연방예산의 가장 큰 지출 항목 가운데 하나로 부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금리 관리라는 새로운 임무를 연준에 부여한다면 이는 곧 재무부의 국채 발행을 지원하는 ‘숨은 재정정책’ 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뼈아픈 교훈을 남긴 닉슨 시대의 정책 개입을 떠올리게 한다.
닉슨시대의 실패는 단순한 역사적 에피소드가 아니다
1970년대 초 닉슨 대통령은 재선거를 앞두고 당시 연준 의장인 아서 번즈를 압박해경기부양을 강요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통화정책은 독립성을 잃었고 인플레이션은 폭발했으며 결국 미국경제는 닉슨 쇼크로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 빠졌다. 중앙은행의 중립성을 훼손한 대가였다. 1979년 10월 긴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개최해 한 번에 금리를 무려 400bp 올리는(11.5% →15.5%) 초강수를 시작으로 기준 금리를 연 20%대까지 끌어올리는 초고금리 정책을 쓴 폴 볼커의 등장으로 안정을 찾았다. 닉슨시대의 실패는 단순한 역사적 에피소드가 아니다. 정치가 중앙은행을 장악할 때 어떤 재앙이 발생하는지 보여준 경고다.
안찬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