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하는 미국과 영국의 ‘테크 동맹’
‘테크 프로스퍼리티 딜 체결' … 인공지능 반도체 양자컴퓨팅 원자력 등 공동투자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은 단순한 의례적 행사가 아니라 양국의 전략적 기술동맹을 제도화하는 계기로 평가된다. 로이터 16일 보도에 따르면 양국은 ‘테크 프로스퍼리티 딜(Tech Prosperity Deal)’을 체결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반도체 통신 원자력 등 첨단산업 전반을 포괄하는 공동 투자와 규제 조율에 나선다.
이번 합의에는 거대 기업들의 직접적인 투자 계획도 포함됐다. 엔비디아는 영국 전역에 12만개의 GPU를 배치하겠다고 밝혔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310억달러(약 43조원)를 들여 런던 인근에 초대형 AI 슈퍼컴퓨터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엔비디아의 데이비드 호건 부사장은 “영국을 AI를 만드는 나라로 만들고, AI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나라가 되지 않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이번 협력이 “양측의 경제성장과 국가안보 모두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 방문은 16일부터 18일(현지시간) 일정으로 진행되며, 이 기간에 합의가 공식 서명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이번 협력은 양자·AI산업의 ‘정책적 전환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온큐, 옥스퍼드 아이오닉스 전격 인수
아이온큐(IonQ)는 6월 영국의 옥스퍼드 아이오닉스(Oxford Ionics)를 인수하기로 합의했고, 12일 영국 정부 산하 투자안보위원회(ISU)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았다. 인수 금액은 10억7500만달러(약 15조원)에 달한다. 거래는 아이온큐 보통주와 현금 결합 방식으로 진행됐다.
옥스퍼드 아이오닉스는 전자식 큐비트 제어(Electronic Qubit Control) 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기존 레이저 방식 대신 표준 반도체 칩 위 전자회로를 활용해 큐비트를 제어한다. 이 기술은 표준 파운드리 공정에 바로 적용할 수 있어 확장성과 안정성이 뛰어나며, 대규모 양자컴퓨터 제작의 걸림돌이던 비용과 안정성 문제를 동시에 개선할 수 있는 해법으로 주목받는다.
아이온큐는 이번 인수를 통해 이온트랩 기반 하드웨어(Forte 시리즈), 주요 클라우드 연동(AWS, 애저, 구글 클라우드), 보안·양자통신 인프라까지 수직적으로 통합한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게 됐다. 이는 미국과 영국의 전략적 기술협력이 구체적 거래로 이어진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아이온큐는 옥스퍼드 아이오닉스에 그치지 않고 최근 몇 년간 적극적으로 인수·투자를 이어왔다.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양자센싱 전문기업 벡터 애토믹(Vector Atomic) 인수 추진이다. 인수 금액은 약 2억5000만달러(약 3조4000억원)로 알려졌으며 전액 주식 딜로 진행될 예정이다. 벡터 애토믹은 원자시계와 항법·방위기술에 특화돼 있어 아이온큐가 정부·국방계약에서 경쟁력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될 전망이다.
아이온큐는 또한 광인터커넥트 기술을 보유한 라이트싱크(Lightsynq Technologies), 양자보안기업 ID 콴티크(Quantique), 위성 통신과 원격탐사 분야의 카펠라 스페이스(Capella Space) 등을 이미 인수했다. 이를 통해 단순 양자컴퓨팅을 넘어 네트워킹 보안암호 우주응용까지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있다. 실제로 아이온큐는 미국 에너지부(DOE)와도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카펠라 스페이스의 위성을 활용한 양자통신·항법시스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아이온큐는 컴퓨팅 센싱 보안·네트워크 우주산업을 아우르는 종합 플랫폼 전략을 통해 경쟁사와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아이온큐의 재무성과는 확장전략을 뒷받침하고 있다. 2분기 매출은 2070만달러(약 2900억원)로 자체 가이던스 상단을 15% 웃돌았다. 예약 규모는 9560만달러(약 13조2000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고객군이 단순 연구기관에서 정부·국방·제약사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6월 유상증자 등으로 확보한 현금성 자산은 16억달러(약 22조원, 7월 기준 프로포마)로 업계 평균 대비 두터운 방어력을 갖췄다. 인수 승인 소식이 전해진 직후 주가는 신고가 부근까지 치솟으며 시장 기대를 반영했다. 다만 밸류에이션은 여전히 논란이 따른다. 실적 대비 시가총액이 높아 단기조정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자기업들의 경쟁과 시장 구도
양자컴퓨터는 기존 디지털 컴퓨터와 계산 원리부터 다르다. 일반 컴퓨터는 0과 1 두 가지 상태만을 가지는 비트(bit)로 정보를 처리한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중첩(superposition) 상태를 지닌 큐비트(qubit)를 활용해 동시에 여러 계산을 병렬로 수행할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얽힘(entanglement)이다. 두 개 이상의 큐비트가 얽히면 한쪽의 변화가 다른 쪽에도 즉각적으로 반영돼 고전적 컴퓨터가 처리할 수 없는 복잡한 연산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원리 덕분에 양자컴퓨터는 분자구조 분석, 금융 포트폴리오 최적화, 물류 경로 탐색처럼 경우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문제에서 압도적인 계산 능력을 발휘할 잠재력을 지닌다.
양자기업들의 기술 접근법은 크게 세 갈래다. 아이온큐는 이온트랩 방식을 택해 높은 게이트 정확도와 양자볼륨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는 범용 계산에 강점을 가진다. 리게티 컴퓨팅은 초전도 큐비트를 활용해 연내 100큐비트 이상 시스템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다. 현재는 36큐비트 다이-투-다이 결합 시스템을 상용단계에 올려놓은 상태다. 디웨이브(D-Wave Quantum)는 양자 어닐링 기술로 최적화 문제에 특화돼 있다. 2분기 매출은 310만달러(약 430억원)였으며, 이는 전년 대비 42% 증가한 수치다.
소프트웨어·서비스 축에서는 퀀텀 컴퓨팅(QCI)이 나노포토닉스 기반 칩과 하이브리드 워크플로를 선보이고 있다. 아직 매출 규모는 미미하지만 2분기 6만1000달러(약 8억원)에 불과하다. 비상장 기업 중에서는 허니웰-캠브리지 합작사 퀀티뉴엄, 포토닉스 기반 프사이퀀텀(PsiQuantum), 프랑스 파스칼, 캐나다 젠이두(Xanadu)가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투자자들이 확인해야 할 지점은 세 가지다. 첫째, 오류정정과 확장 추진 계획이다. 아이온큐는 2030년까지 200만 큐비트급 시스템을 달성하고, 논리 오류율을 1조분의 1 이하로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둘째, 고객지표의 질적 개선이다. 단순한 개념 증명(Proof of Concept)을 넘어 반복 계약, 증액 계약, 정부와 대형 산업 프로젝트 수주가 중요하다. 셋째, 자본구조와 현금 소진 속도다.
양자 하드웨어는 장기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만큼 현금 방어력과 후속 조달 능력이 주가 변동성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리스크도 크다. 리게티는 적자 폭 확대, 디웨이브는 어닐링 중심 포트폴리오의 시장성 논란, QCI는 대형 고객 확보가 관건이다. 아이온큐 역시 대규모 인수 이후 통합 리스크와 공급망 변수가 잠재적 위험으로 꼽힌다.
트럼프행정부와 영국정부는 이번 합의를 통해 기술표준과 투자 인센티브를 조율하고 규제 정합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MS의 브래드 스미스 회장은 액티비전 인수 반대 당시를 “암울한 시기”라고 회고하며 지금은 상황이 “엄청나게 나아졌다”고 평가했다.
영국은 디지털세, 온라인 안전법 등에서 미국과 갈등을 빚었지만 이번 합의를 계기로 양자·AI 분야에서는 협력 기조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데이터센터 전력비용, 송전망 확충, 인력 양성, 보안 규정 상호 인정 같은 현실적 문제도 병행 논의되고 있다. 옥스퍼드 아이오닉스가 국가양자컴퓨팅센터(NQCC)에 공급한 ‘QUARTET’ 시스템처럼 연구·산업 현장의 실사용 기회도 넓어질 전망이다.
미·영 양자 협력의 상징적 기업 부상
아이온큐는 이번 일련의 인수와 협력을 통해 미·영 양자 협력의 상징적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온 제어 전자화는 집적도와 안정성을 높이는 해법이 될 수 있고, 표준 반도체 공급망과 결합해 생산 효율도 개선할 수 있다. 벡터 애토믹과 라이트싱크, 카펠라 스페이스, ID Quantique 등과의 인수·협력은 양자컴퓨팅에 더해 센싱·보안·네트워크·우주 응용을 아우르는 종합 기술 기업으로의 진화를 보여준다.
막대한 현금, 구체적인 추진 계획, 공격적 인수 전략을 갖춘 아이온큐는 미국 증시 양자 관련주의 대표주로 부상했다. 다만 초기 산업 특성상 실적의 지연과 변동성은 불가피하다. 결국 투자자들은 정부 프로젝트 수주, 반복계약, 계획실행 같은 지표를 주목해야 한다. 이번 미·영 기술동맹은 양자 산업의 정책·자본·수요를 동시에 자극하는 계기가 됐으며 아이온큐가 그 흐름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