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인텔에 50억달러 투자
AI칩 공동개발 전략 동맹
인텔 주가 23% 뛰어올라
엔비디아가 미국의 대표적 반도체 기업 인텔에 50억달러(약 6조9000억원)를 투자하며 새로운 전략적 동맹을 맺었다. 오랜 경쟁자였던 두 회사가 PC와 데이터센터용 차세대 칩 공동 개발에 나서면서 글로벌 반도체 지형에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인텔 보통주를 주당 23.28달러에 매입해 지분을 확보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날 인텔 종가(24.90달러)보다는 낮지만, 지난달 미국 정부가 10% 지분을 인수하며 지급한 20.47달러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이번 거래가 완료되면 엔비디아는 인텔의 주요 주주 중 하나로 올라서며 지분율은 4%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발표 직후 인텔 주가는 23% 급등해 30.57달러에 마감했고, 엔비디아 주가도 3% 이상 올랐다. 반면 엔비디아의 기존 CPU 협력사인 영국 ARM 주가는 4.5% 하락하며 시장의 미묘한 균형 변화를 드러냈다.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합의를 “역사적인 협력”이라고 강조하며 “엔비디아의 AI 및 가속 컴퓨팅 기술과 인텔의 CPU 및 x86 생태계를 결합해 차세대 컴퓨팅 시대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텔 립부 탄 CEO 역시 “양사가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며 공동 개발 의지를 확인했다.
다만 이번 합의에는 인텔의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을 통한 제조 협력은 포함되지 않았다. 인텔은 수년째 파운드리 사업 확대를 시도했지만 대규모 외부 고객 확보에 실패해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장기적으로 생산을 인텔로 이전할 경우 대만 TSMC 의존도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황 CEO는 “TSMC는 세계적 수준의 파운드리이며 그 마법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며 당분간 생산 이전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번 투자는 인텔에 사실상 생명줄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인텔은 한때 실리콘밸리를 대표했지만 최근 수년간 경쟁에서 밀리며 고전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10% 지분을 취득하며 안보 차원에서 인텔을 지원했고, 소프트뱅크도 최근 20억달러를 투입했다. 엔비디아의 자금 유입으로 인텔은 단기간에 100억달러 이상의 신규 자본을 확보하게 됐다.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투자가 단순한 지분 참여를 넘어 전략적 성격을 갖는다고 평가한다. CCS 인사이트의 제프 블레이버 CEO는 “이는 단순한 구제금융이 아니라 인텔의 미래를 명확히 할 수 있는 전략적 정렬”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협력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도 파급력이 예상된다. 인텔과 엔비디아가 합작 칩을 내놓을 경우 AI 서버 시장에서 AMD와 브로드컴의 입지가 위협받을 수 있다. 또한 PC 시장에서도 엔비디아의 맞춤형 GPU를 탑재한 인텔 칩이 AMD의 점유율을 잠식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편 두 회사는 이번 투자와 공동 개발이 상호 라이선스 계약이 아닌 상업적 거래임을 강조하며, 구체적인 제품 출시 시점은 밝히지 않았다. 발표 직후 황 CEO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합의가 엔비디아가 인텔 파운드리 고객이 되는 것으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며 양사 모두 당분간 대만 TSMC에 의존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30년 넘게 경쟁 구도를 유지해온 두 기업이 AI 시대를 맞아 손을 잡은 것은 미국 내 반도체 자급 전략, 글로벌 공급망 재편, 그리고 AI 인프라 경쟁 심화라는 복합적 배경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