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충격에 미 기업·인재확보 흔들

2025-09-22 13:00:31 게재

트럼프 행정부 H-1B 수수료 10만달러 인상안에 글로벌 업계 충격파

19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골드카드 비자(Gold Card Visa)’와 관련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 19일(현지시간) 발표한 H-1B 전문직 비자 수수료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 인상 방침은 미국 내 고용 환경과 해외 인재 확보 전략을 동시에 뒤흔들고 있다. 백악관은 신규 신청자에게만 적용되는 제도라고 해명했지만, 세부 집행이 불투명해 불안은 확산되고 있다.

H-1B 비자는 매년 6만5000개의 일반 쿼터와 석사 이상 학위자에게 배정되는 2만개의 추가 쿼터로 운영된다. 올해는 47만건이 넘는 신청이 몰리며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달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자 한 장이 채용 성패와 직결되는 상황에서 고액 수수료가 더해진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인도 IT 서비스 업계는 특히 큰 타격이 예상된다. 타타 컨설턴시 서비스, 인포시스, 위프로 등은 수십 년간 미국 프로젝트와 파견 인력에 기반한 모델을 유지해왔는데, 인당 10만달러의 수수료는 기존 인건비 구조를 사실상 무너뜨릴 수 있다. 미국 매출 비중이 절반에 이르는 이들 기업은 신규 채용 축소나 프로젝트 조정 외에 뚜렷한 대안을 찾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인도 경제 전반에도 파급력이 크다. 인도 기업들은 H-1B 제도를 통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데이터 전문가, 컨설턴트 등 수십만명의 인력을 미국에 파견해왔고, 이는 매년 수십억달러의 매출로 이어졌다. 인도 국립소프트웨어서비스기업협회(Nasscom)는 이번 조치가 IT 수출 성장률을 낮추고, 신규 졸업자의 해외 취업 기회를 줄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개인 차원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영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려던 34세 엔지니어가 이미 집을 정리하고 자동차까지 팔았지만 회사 변호사들로부터 “추가 정보를 기다리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뉴욕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한 여성은 “10년 가까이 미국에 살았는데, 갑자기 떠나라 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또 일부 졸업 예정자들은 학위 과정을 마쳤음에도 채용이 비용 문제로 보류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는 불안에 휩싸였다.

법적 대응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민 전문 변호사 라켈 밀스타인은 “비자 발급을 앞둔 이들이 입국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불안에 휩싸였다”며 “즉각적인 소송과 법원의 가처분 신청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 이민 단체와 일부 주 정부도 이번 조치의 위헌 여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기업들이 매우 행복할 것”이라며 “많은 돈을 내더라도 생산적인 인재를 붙잡아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업계 반응은 냉담하다. 대기업은 충격을 일부 흡수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채용 비용이 급등하면서 신규 고용을 포기할 수 있다. 이는 미국 내 기술 혁신의 다양성을 약화시키고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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