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의존의 군대에서 자주적 강군으로

2025-09-23 13:00:03 게재

오늘날 국제질서는 중국의 부상으로 지난 80여년간 유지돼온 미국의 패권질서가 흔들리는 형국이다. 이달 3일 중국의 대규모 전승절 행사는 군사력 과시를 넘어 반미연대의 결속을 노골화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세력 전이 현상의 서막으로 평가된다.

본격적인 ‘냉전 2.0 시대’가 시작됐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시일 내 강대국 간 대규모 충돌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한반도와 대만해협 등 지정학적으로 약한 고리에서는 불안정성이 날로 고조되고 있어 우리 외교안보정책의 취약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금까지 드러난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방전략 구상은 동맹에 대한 부담의 전가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은 대중견제에 집중하고, 동맹국은 자국 안보의 책임 강화와 대외적 역할 확대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러한 기조가 현실화될 경우 대북억제력 강화가 절실한 우리 정부에 이중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긴장과 군의 과제

이재명정부가 내세운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는 미중 경쟁의 파고 속에서 시험대에 올랐다. 이 대통령은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과의 인터뷰에서 “한미동맹을 핵심축으로 삼되 한중관계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는데, 고뇌 어린 균형의 선택으로 읽힌다.

남북관계도 정부 출범 이후 대북방송 중단과 장비 철거, 9.19 군사합의 복원 의지 등 유화적 신호를 보냈지만 최근 북한은 중러와 밀착하면서 ‘핵 포기 불가’ 재천명을 비롯해 ‘핵·재래식 병진노선’을 예고하는 등 대남 무시를 넘어 적대성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 대통령은 지난 21일 “우리 군을 유무인 복합체계로 무장한 스마트 강군으로 재편하고 자주국방 태세를 확립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는 우리 군에 패러다임 전환을 주문한 것으로 우크라이나전쟁과 중동 분쟁에서 드론과 인공지능(AI)이 전쟁의 판도를 좌우한다는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읽힌다. 최근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50만 드론 전사 육성 계획”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우리 군도 변해야 한다. 병력 부족이 현실화된 지금 막연한 두려움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군이 AI와 드론을 결합한 유무인 복합체계를 조기에 확보하고 AI 전사를 육성하는 질적인 혁신을 강화한다면 양적인 약점은 오히려 강점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우리 군의 보수적 문화와 구조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에서 드러난 군의 퇴행적 모습은 여전히 권위주의적 유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더구나 전시작전통제권을 72년째 미국에 의존하는 구조는 우리 군의 독자적 전략과 전술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강대국의 지휘 없이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는 패배주의적 발상은 이제 버려야 한다.

동맹은 추종이나 의존이 아니라 자주적 역량을 기반으로 균등한 협력관계로 발전할 때 더욱 굳건해질 수 있다. 이를 위해 군 간부들의 혁신이 시급하다. 혁신은 지식의 확장과 유연한 사고에서 비롯되지만 우리 군의 지식 인프라는 부실한 수준이다. 미국 펜타곤에는 30만 권 이상의 군사전문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있는 반면 우리 군은 군사학교 도서관을 제외하면 삼군본부가 위치한 계룡대조차 제대로 된 군사도서관이 없는 현실이다.

공부하지 않는 군대는 변화와 혁신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 종종 군 간부들이 골프장을 자주 찾는다는 지적에 대해 우리 군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자주와 혁신의 군대가 옳은 방향

오늘날 우리 군은 세계 5위의 군사력을 보유하고도 독자적인 전쟁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반쪽짜리 군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민주적 통제 확립과 지식기반 혁신, AI·드론을 축으로 한 첨단화다. 동맹도 중요한 자산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은가.

이제 우리 군은 과거형 군대와 절연해야 한다. ‘의존의 군대에서 자주적 군대로’ ‘양적 군대에서 첨단 강군으로’ 변모할 때 강대국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 안보와 국익을 굳건히 지켜낼 수 있다. 국민의 신뢰와 박수를 받는 길은 간단하다. 군 본연의 정신자세와 임무완수에 충실하면 된다.

임명수 이화여대 특임교수 안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