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위협 ‘합성니코틴’ 규제 가시화
이르면 이달 중 본회의에 … 유사니코틴 등 신종 물질 규제도 서둘러야
액상형전자담배의 원료인 합성니코틴을 ‘담배’로 규정하는 법안이 국회 상임위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여야는 이르면 이달 중 본회의에서 해당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다만 위해성 평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유사니코틴이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경제재정소위원회를 열어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의결했다. 개정안에는 담배의 정의를 천연니코틴의 원료인 ‘연초의 잎’에서 ‘연초’ 또는 ‘니코틴’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해 확정되면 합성니코틴을 주원료로 하는 액상형전자담배도 일반 담배와 마찬가지로 판매·광고 규제를 받고, 과세 대상으로 분류된다.
다만 소상공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소매점의 거리 제한 규정을 법 시행 후 2년간 유예하는 방안도 포함했다. 또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자영업자가 업종 전환 또는 폐업을 원하면 정부가 지원하도록 했다.
개정안은 기재위 전체회의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이르면 이달 중 본회의에 오를 예정이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에서는 입법화 문턱에서 좌절을 반복한 법안이라 끝까지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9년 논란 끝 결실 거두나 = 합성니코틴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이를 원료로 하는 전자담배를 통한 청소년 흡연이 급증하는 등 부작용에도 ‘담배’에 포함되지 않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액상형전자담배는 기존 궐련형 담배와 달리 광고 규제 문턱이 낮고, 온라인·자판기·스쿨존 판매도 가능했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일반 담배를 통한 청소년(중1~고3) 흡연율은 2020년 4.4%에서 2023년 4.2%로 변화가 거의 없었다. 반면 액상전자담배 흡연율은 1.9%에서 3.1%로 늘었다. 특히 2019~2023년 청소년 흡연자 3명 중 1명(32%)은 액상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했다. 액상형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청소년의 60.3%는 현재 주로 일반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런 부작용 등을 이유로 국회에서도 2016년부터 합성니코틴 규제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업계 반발에 부딪혀 9년째 발의와 계류만 반복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합성니코틴도 유해물질이 상당하다는 보건복지부 연구 용역 결과가 나오면서 논의에 불이 붙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성훈 의원(국민의힘)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연구 용역 최종 결과에 따르면 합성니코틴 원액에 발암성과 생식독성을 일으키는 유해물질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합성니코틴 원액에서 많은 유해물질이 검출되는 것은 니코틴 합성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반응물질과 유기용매를 사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연구보고서는 합성니코틴 원액에 다수 유해물질이 있다는 점을 들어 “연초니코틴과 동일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합성니코틴이) ‘순수’ 물질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외국처럼 합성니코틴과 연초니코틴을 구별하지 않고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앞서 세계보건기구(WHO)도 액상전자담배의 심각한 중독 위험과 유해성을 경고했다. 특히 WHO는 아동·청소년 등을 유인하는 마케팅 등으로부터 국민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 단위의 강력한 규제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마약 유통 수단될 때까지 방치 = 일부 연구에서는 액상전자담배 등 전자담배를 이용하는 청소년들은 우울·불안 증세를 겪을 위험이 커진다는 보고도 있다.
최근에는 청소년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액상전자담배로 위장한 신종마약까지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이러다 보니 청소년들의 액상전자담배 접근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규제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법안들을 수년째 외면하는 국회를 향한 비판이 거세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최근 발간한 ‘마약류 감정백서 2024’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담배를 이용해 합성대마로 대표되는 신종마약을 유통한 사례도 늘었다. 지난해 합성대마 압수 건수 5650건 중 액상전자담배(카트리지 충전용 액상 포함)가 3868건(68.4%)이나 됐다. 2022년의 경우 액상전자담배 비율이 61.0%였다. 특히 10대에게 압수한 합성대마 176건 가운데 138건(78.4%)이 전자담배를 이용하고 있었다.
국과수는 “액상전자담배 구매가 쉬워지면서 합성대마 시장이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과거엔 담배처럼 흡입하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속칭 ‘브액’이라 불리는 액상전자담배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규제 대비한 신종 물질로 진화 중 =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유사니코틴이 논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유사니코틴 같은 대체재가 이미 등장해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유사니코틴은 흔히 ‘무니코틴 전자담배’란 이름으로 판매된다. 실제로 니코틴과 유사한 분자 구조를 가진 신종 물질로 안전성 검증이 이뤄지지 않아 합성니코틴과 마찬가지로 청소년에게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종 물질들을 법 테두리로 들어오게 해 규제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국회와 정부가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국회는 합성니코틴 규제 이후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업자들이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화학물질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차단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된 후 시행되면 정부는 연간 9300억원가량의 추가 세수를 확보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개별소비세 1900억원, 지방세·부담금 7400억원 등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