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유엔총회서 ‘미국우선주의’
“기후위기는 최대 사기극” 독설 … 북핵·한반도 정세는 언급 없어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유엔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내가 집권 2기 들어 7개의 전쟁을 종식시켰지만 유엔으로부터는 단 한 통의 연락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유엔의 무기력함과 책임 회피를 비판하는 대신 자신의 업적을 과장해 과시하는 트럼프 특유의 행보다.
그는 연설 내내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주장하면서도 유엔이라는 국제 협력의 상징에 대한 불신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트럼프는 “유엔은 전쟁을 멈추기 위한 행동이 아닌 공허한 말만 반복하고 있다”며 “행동이 없는 말은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관심을 끈 부분은 기후변화에 대한 발언이었다. 트럼프는 기후위기론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기극”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1980~90년대 유엔 기구들이 예측했던 지구 온난화 재앙은 실현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기후위기 담론 자체가 정치적으로 조작된 허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온이 오르든 내리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전부 기후변화라고 부른다”며 “1920년대에는 지구 냉각이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 했고, 1989년에는 10년 내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들이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라 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을 겨냥해 “녹색 사기(green scam)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여러분의 나라가 실패하지 않으려면 이 잘못된 정책에서 당장 손을 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확대가 오히려 에너지 비용 상승과 산업기반 붕괴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완전한 녹색은 완전한 파산”이라는 표현을 동원한 그는 친환경 정책이 실제로는 중산층과 산업 근로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의 에너지 위기를 예로 들며 “중국과 인도는 여전히 막대한 석탄을 태우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만 탄소를 줄이라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또 탄소 발자국(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해서는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꾸며낸 사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기후위기를 명분으로 한 규제와 세금이 서구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석유·가스·원자력을 중심으로 한 미국식 에너지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무역과 이민 문제에 대해서도 강경했다. 그는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활발히 무역하길 원한다. 그러나 공정하고 상호적인 무역이어야 한다”며 보호무역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브라질과의 무역 사례를 언급하며 “그들이 우리에게 불공정한 관세를 부과했던 시절은 끝났다”고 말했다.
이민정책에 대해서는 “우리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불법으로 들어오면 감옥에 가거나, 추방되거나, 그보다 더 먼 곳으로 보내질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유엔이 62만명의 이주자를 미국으로 데려오는 데 예산을 썼다며 “유엔은 침략을 막는 곳이지 그것을 지원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서방 국가들이 “하마스의 만행에 대한 지나친 보상”을 하고 있다며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 승인을 반대했다. 그는 “이 기구(유엔)의 일부 회원국은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는 “러시아가 평화 협상에 나설 준비가 안 됐다면 미국은 강력한 관세로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다만 “유럽 국가들이 함께하지 않으면 그 조치는 효과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러시아산 에너지 구매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면서 “지금 유럽은 러시아와 싸우면서 동시에 러시아 석유를 사고 있다. 그건 모순이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연설에서 트럼프는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대화 가능성을 시사한 상황에서 관련 메시지가 나올지 주목됐으나 침묵으로 일관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