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트럭 시대, 중국이 주도한다
판매량 중국 8만대 vs 미국 200대 … 정부 정책 지원이 성패 가르는 요소
대형 트럭의 전동화는 승용차보다 5년 정도 늦었지만, 이제 뚜렷한 변화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간 까다로운 운행 환경과 낮은 수익성, 중고가치 산정의 어려움 때문에 발목이 잡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배터리 가격이 떨어지고 성능이 좋아진 데다 충전소도 늘어나면서, 운송업체들이 실제 써보며 쌓은 경험이 이런 우려들을 빠르게 해소시키고 있다.
올해 전 세계 중·대형 트럭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4%로 전망된다. 중국은 무려 14%에 달하고, 일부 유럽 국가들은 이보다도 높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휘발유 수요가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그동안 성장의 버팀목이었던 디젤마저 전기 트럭의 확산세 앞에서 장기 전망이 흔들리고 있다.
정책이 승부를 가르는 핵심이다. 중국은 트럭 연비 기준을 까다롭게 만들고 구매와 충전에 각종 혜택을 줬으며, 낡은 트럭 폐차를 장려해 전환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유럽은 2025년부터 트럭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이 적용돼 전기차 도입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은 규제 변화의 여파로 성장세가 주춤하는 모습이다.
도시 정책의 힘도 커졌다. 네덜란드는 지방정부가 도심에 배기가스 배출 금지 구역을 만들 수 있게 하면서 상반기 상용 전기 밴의 점유율이 80%를 넘어섰다. 암스테르담과 헤이그, 에인트호번 등 18개 도시가 이미 시행 중이고, 11개 도시가 추가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전기 대형 트럭의 활용 범위도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도심과 근거리 운행이 주류였지만, 이제 장거리용 신형 모델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볼보와 만(MAN), 메르세데스벤츠가 새 모델을 선보였고 테슬라 전기트럭 '세미'도 합류했다. 중국을 제외하면 사실상 첫 양산형 장거리 모델들이 본격 투입된 셈이다.
물류·소비재 기업들의 도입이 늘어나는 가운데, 장거리 전기 트럭은 디젤 대비 에너지 효율이 2~3배 높아 연료비가 비싸거나 전기요금이 싼 지역에서는 이미 경제성을 확보했다고 FT는 전했다. 대부분 메가와트급 초고속 충전을 지원하고, 전용 트럭 충전소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간 재무적 부담으로 여겨졌던 배터리 수명 우려는 제조사들이 보증을 늘리면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e악트로스600은 70만km 이상, 이베코는 120만km 보증을 내걸었다. 일부 모델은 세대가 바뀌면서 보증이 거의 두 배 늘었다. 긴 보증은 감가상각률을 낮추고 잔존가치를 높여 금융 비용을 줄이는 효과로 이어진다.
반면 수소연료전지 트럭의 전망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승용차 시장에서 밀린 뒤 대형 트럭을 마지막 승부처로 삼았지만 판매는 급감했고, 니콜라와 하이존모터스를 비롯해 도산하는 업체들이 늘었다.시장이 답을 내린 뒤에는 흐름을 막으려 하기보다 전환 속도를 뒷받침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힘을 얻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최대 전기트럭 제조업체 사니그룹이다. 2021년 전기트럭 사업에 뛰어든 뒤 빠르게 성장해 현재 중국 내 점유율 약 16%를 확보했으며, 올해 3만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창사 공장은 연간 15만대 생산이 가능하고, 향후 5년 안에 30만대로 늘릴 계획이다.
배터리 교환과 태양광 충전망, 무인 주행 등 핵심 기술에 매출의 8%를 연구개발비로 쏟아붓고 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 공장을 가동 중이고 브라질과 유럽 진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